KT 윤리경영

2010. 4. 20. 00:56전략 & 컨설팅/전략

분명히, 유망한 임직원이 억울하게 징계를 받는 부작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향성은 맞다. KT 같은 회사의 구조화된 비리를 걷어내는 것이 회사에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고 체질을 바꾸는 첩경이 될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수익구조가 개선되는 것도 맞고. 

이런 비리가 너무 만연 하기 때문에 후진국이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것이고, 좋은 회사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대기업이 되고 흐름을 잘타서 global하게 잘 나가는 회사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CEO Leadership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볼 수 있는 case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KT가 정말 한국을 넘어서는 ICT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negative하다.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신성장 동력 발굴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공기업 체질이 어디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납작 엎드려서, 이 바람만 지나가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것을 예상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을텐데... 
이미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사고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SKT 보다 더 문제가 많고 조직이 경직된 곳이 KT다. 직원들이 미래가 없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 하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이런 곳을 바꿀 수 있다면 .. 일본 애들이 하는 식으로 하면, 경영의 신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



지난해 6월 5일 성남시 분당구 KT그룹 본사 강당. KT와 KTF가 합병한 이후 첫 간부회의가 계열사 사장과 임원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그해 2월부터 강도 높게 진행된 임직원 부정부패행위 감사사례가 줄줄이 발표됐다.

이어 정성복(56·사시 25회) KT 윤리경영실장(사장)이 중대 발표를 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과거 비리에 대한 자수서를 6월 말까지 받겠다. 자수서를 제출할 경우 비밀을 보장하고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 자수하지 않다가 적발되면 형사고발 조치까지 취할 것이다.” 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

한 달여 뒤 임직원들이 제출한 자수서를 받아든 정 실장은 깜짝 놀랐다. “구체적인 자수서의 숫자와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다양한 유형의 비리가 망라돼 있었다. 말로만 전해오던 비리들이 대부분 사실이었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할 정도였다.”
자수서 중에는 협력업체나 고객으로부터 뇌물·금품·향응을 받거나 회사 공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고백이 적잖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승진·채용·전보 등 인사와 관련해 윗사람에게 골프접대를 하거나 부하직원에게 돈을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정 실장은 자수서를 토대로 임직원 윤리규범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윤리규범은 정보유출, 금품·향응수수, 골프, 공금횡령과 유용 등으로 나눠 만들어졌다. 임직원 간 금품수수를 금지, 부하직원에게 보증을 요구하면 직권남용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했다. 임직원 간 골프도 금지 대상에 올랐다.

분당 파크뷰 비리 파헤친 강골 검사 출신
서울고검 검사였던 정 실장이 KT의 감사 사령탑을 맡은 것은 지난해 1월 말이다.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불릴 만큼 대우가 좋았던 거대 통신기업 KT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2008년 10월 KTF 조영주 당시 사장, 한 달 뒤 남중수 KT 당시 사장이 금품수수 혐의로 잇따라 구속되면서 기업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던 것이다. KT 사장에 내정된 이석채 현 회장은 ‘윤리경영’ ‘클린 KT’를 경영 최우선 가치로 내걸었다. 이 사장은 그 일을 맡길 적임자로 ‘강골검사’로 알려진 정 실장을 택했다. 그때까지 정 실장은 이 회장과 일면식도 없었다. 이 회장은 정 검사를 윤리경영실장으로 상무급이던 직급을 부사장급으로 두 단계 올렸다. 또 내부 감찰의 전권을 맡겼다.

“윤리경영실장으로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내부 감찰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982년 공기업으로 전환됐지만 이전의 공무원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임직원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면 밥값을 아랫사람이 내는 경우가 많았다. 국세청과 경찰 문화가 그렇다고 하지 않나. 실제로 내가 강력부 검사로 근무할 때 파견 나온 경찰관에게 점심을 사면 그 경찰관이 놀라워했다. 상납의 기본이 아랫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인사 때 잘 봐달라는 상납 관행이다.”

14일 성남시 분당 KT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정성복 윤리경영실장이 들려준 당시의 느낌이다.

정 실장의 지휘로 KT윤리경영실은 2월부터 수도권 서부사업본부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인터넷과 전화통신망 가설 공사 수주를 도와준 대가로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의혹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특별감사 후 상무급 임원 등 24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일선 지사장 시절 거액을 유용한 임원과 공사 수주를 대가로 뒷돈을 받은 간부급 사원 등 6명은 검찰에 고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기업이 자사 임직원을 형사 고발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당시 직원들은 회사 내부의 일을 외부로 넘겨 수사케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노조의 반발도 거셌다. 하지만 고발조치는 KT 자정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회장의 의지가 확고했고 나에게 전권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부분에서 배짱이 맞았다. 고발조치는 임직원들을 긴장시켰고 회사 내부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정 실장은 2002년 서울지검 조사부장 시절, 분당파크뷰 사건의 수사 단초를 마련한 베테랑이었다. 분당파크뷰 사건은 2000~2001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 백궁·정자지구에 파크뷰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시행사인 에이치원개발이 용도변경, 건축 허가를 따내기 위해 김옥두 당시 민주당 의원 등 정·관계 인사 28명에게 사전분양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수사를 중단하라는 수뇌부의 지시를 듣지 않고 용도변경 의혹에 대한 수사를 강행했다. 이후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2002년 5월 “사회지도층 인사 130여 명이 파크뷰 아파트를 특혜분양 받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특수부가 투입돼 전모가 드러났다.

KT 임직원들에 대한 수사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과 서울 서부지검, 부산지검, 인천지검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검찰 수사 결과 금품 수수는 공사 발주·납품·인사 등의 과정에서 관행처럼 이뤄졌다. 협력업체로 선정, 혹은 재선정되거나 광케이블망 공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다.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따게 해 주면 발주 금액의 3~5%를 받았다. 수도권 서부사업본부가 2004~2008년 발주한 3300억원 상당의 공사 가운데 68%가 수의계약이었다. 회사의 판촉비를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인사 청탁 명목으로 2년 동안 8000여만원을 상납받은 본부장급 간부도 적발됐다. 하위직 보다는 사업 결정권이 있는 상위직이 많이 적발됐다. 그동안 감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고, 적발돼도 적당히 덮는 온정주의적 처리가 비리를 키웠던 것이다.

“감사 초기에 형사고발된 한 지사장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그 부하 여직원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여직원은 이야기 도중 통곡했다. 직속 상사가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제지할 수도 없고 신고할 수도 없어 자책감에 빠져 있었는데 결국 처벌을 받게 돼 기뻐서였다고 했다. 그때 정직하게 일만 해온 일반 직원들의 맺힌 한을 풀어준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결국 우리가 한 일은 별 생각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부조리에 대해 일반인의 상식 기준을 들이대 바로잡은 것이다.”

KT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주인 없는 회사’ 특유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고, 부정부패를 걸러내는 감사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현재 KT윤리경영실에는 사내 변호사 9명을 포함해 76명이 근무한다. 감사·감찰·특허·법무·리스크관리 등의 팀이 있으며 감찰 업무는 25명이 담당한다. 지난해 KT의 감사 실적은 전년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 2008년 징계 58명에 경고 213명에 그쳤으나 2009년에는 82건을 감사해 148명을 징계하고 142명에게 경고조치했다. 또 66명에게 사표를 받았는데 이 중 31명이 상무보 이상 간부였다. 당시 상무보 이상 간부 380명의 9%가 옷을 벗은 것이다. KT는 또 지난해 본사와 지사에 근무하던 임직원 17명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 중 6명이 구속됐다. 이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1000억원대로 추산된다.

감사를 철저히 해도 틈새는 있다. KT는 이런 틈을 막기 위해 구매·발주·계약·감리·업체 선정 등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있는 31개 기관 391개 부서를 ‘클린존(Clean Zone)’으로 지정해 특별관리하고 있다. 임직원이 불가피하게 금품을 받으면 ‘클린 365센터’에 신고토록 했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 때 갈비세트 등 122건이 신고돼 30건은 반송하고 91건은 사회단체에 기증, 1건은 폐기처분했다. KT가 지난해 12월 실태조사한 결과 812개 협력사 중 95% 이상이 KT 임직원 들에게 금품제공, 골프 접대를 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정 실장은 “지난해 내부비리 척결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수익창출에 도움이 되는 제도 개선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채 회장이 전권 줘서 가능”
회사의 영업이익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KT의 매출은 18조9558억원으로 2008년 18조 9328억원보다 230억원(0.1%)가량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2008년 1조4425억원에서 1조8216억원으로 3791억원이 증가했다.

또 감사 과정에서 780억원이 과잉투자된 사실을 밝혀냈고 담합행위를 이유로 부과된 1160억원의 과징금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350억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KT 측은 지난해 윤리경영에 따른 재무효과가 금액으로 환산하면 6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8조원의 매출을 내야 실현 가능한 액수다. 정 실장은 “KT는 영업이익이 2007년 1조원, 2008년 5000억원이었으나 2009년에는 0원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며 “그 경우 시가총액 13조원의 40%를 소유한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나가면 부도가 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CEO의 구속을 계기로 감사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KT가 살아났다는 분석이다.

KT 노조도 사측의 윤리경영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KT 노조는 지난해 좋은 조건으로 임직원들에 대한 특별명예퇴직을 해 달라고 사측에 먼저 제의해 6000명이 명예퇴직했다. 민주노총에서도 탈퇴했다.

정 실장은 듀폰코리아의 예를 들며 투명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듀폰코리아 김동수 회장이나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등의 투명경영 의지에 비하면 우리는 초보적 수준이다. 듀폰코리아는 회사 돈 5만원을 개인용도로 쓴 것만 드러나도 해임한다고 한다. 윤 회장은 친인척이 100여 명이 되지만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왔다. 앞으로는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윤리경영과 혁신만이 살 길이다.”

조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