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3. 19:06ㆍ책 & 영화
재밌게 읽었다.
지금 현재 우리 회사와 내 모습이 여러가지로 겹쳐 보이기도 했다.
왜 하필 블랙잭인가?
밑의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데즈카가 완벽한 궁지에 몰려 있을 때, 판을 깨면서 그를 되살린 작품이 바로 '블랙잭'이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도산되고 집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를 구한게 블랙잭이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공과가 있다.
'만화의 신'이라는 데즈카 오사무에게도 그 원칙은 당연히 적용될 뿐 더러, 오히려 더 극적으로 강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이라는 표현은 좀 다른 뉘앙스를 가지게 된다. 완전 무결의 존재가 아니라, 강한 압박의 근원으로서의 존재?)
난 어린 시절에 아톰부터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에 해주던 여러가지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들을 보며 자랐지만,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정도가 내 마음속의 작품평이 될 것 같다.
그 소재의 참신성이나, 시작 단계의 흐름은 좋아했지만,
진행되어 가면서 (내 관점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갈등 요소라든지, 비이성적인 판단 및 그에 따른 전개라든지, 아뭏든 마냥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는 찝찝함이 있었다.
다 커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본적 정서의 매우 안좋은 부분이었을 수도 있고,
이현세 류의 작품에서도 느껴지는 대책없는 심각함과 울분과도 어느 정도 맥이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젊고, 가난했고, 힘들었다는 점에서 이현세의 작품들을 이해 하기는 한다.)
예를 들어, 리본의 기사를 보면,
남자와 여자를 오가며 살아야 되는 그 소재의 참신성과 시작은 좋았으나,
그게 전개가 되가면서 왜 사람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불합리함이 당연하게 녹아드는 설정들이 계속 되고, 그 때문에 만화가 싫어졌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고, 아주 작게, 은밀하게 여기저기 숨겨져 있었던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장점과 단점은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로 한 몸 이었던 것 같다. 데즈카의 작품 세계에서.
그 사람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또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 볼 수 있겠지만, 내게는 데즈카 오사무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객관적으로 줄 수 있는 만화가/애니메이터이다.
그런데 신기한게, 데즈카 오사무에게는 그만의 어떤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그게 굉장히 짜증나고, 멀리하고 싶고, 어이없을 정도로 어설프기도 한데... 한번 더 보고 싶고, 잊을만 하면 생각나고.. 하는 그런거다.
아뭏든, 뒤의 이야기들도 기대가 된다.
블랙잭 창작비화. 1
- 저자
- Masaru Miyazaki (원작) 지음
- 출판사
- 학산문화사 | 2013-06-25 출간
- 카테고리
- 만화
- 책소개
- 미야자키 마사루의 만화 『블랙잭 창작비화』 제1권. 신의 열정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78177
...(중략)...
데즈카 오사무와 미야자키 하야오
물론 그들은 작품의 성향에도 차이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가 갈등하는 인간들의 화해를 주선하며, 어린이와도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누려 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관되게 자연과 문명을 묘사하면서, 그것을 파괴하는 인간도 함께 비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13년이라는 나이 차이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신’이었으며, 한 사람은 ‘대부’다. 그런데 그들은 일관적으로 서로를 의식해 비판을 가하거나, 너무 의식한 나머지 일절 언급을 하지 않는 팽팽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우주소년 아톰>을 제작하면서 스폰서로부터 ‘염가 제작’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그 스스로가 애니메이션 제작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꿈꿔왔으며, ‘월트 디즈니’처럼 캐릭터 상품권 등의 로열티로부터 찾아오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자극했다. 그는 사회주의 계열 기관지에 처음으로 만화를 연재하면서 “미 제국주의 디즈니의 영화에 대항하겠다”고 선언해 데즈카 오사무에 반발했고, “그가 <우주소년 아톰>을 초저가로 제작하면서 그 이후의 애니메이션계는 저가 제작이 판치기 시작했다. 그가 해온 일은 틀린 것”이라고 데즈카 오사무 사망 이후의 ‘추도문’에서까지 발표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착취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지적이 그렇듯 매서운만큼 뭔가 반응이 있었을 것도 같지만, 데즈카 오사무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쓴 자서전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은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늘 많은 동료들과 어울렸으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했던 데즈카 오사무답지 않은 처사였는데, 일각에서는 “그만큼 민감하게 의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진실은 그만이 아는 것일테지만, 상당히 설득력있는 의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침묵의 응전’이었던 셈이다.
“데즈카 오사무로 인해 염가제작이 판쳐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착취당했다”는 시각과, “데즈카 오사무가 없었으면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 자체가 다져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은 지금도 충돌하고 있다. 물론 어떤 시각이 더 옳은지 ‘확실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적도 ‘애니메이터의 권리와 의무’ 차원에서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현실적인 지적이라는 것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은 저가제작으로 인해 결국 경영난으로 부도를 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전’에 대한 데즈카 오사무의 ‘응전’은 사실상 ‘침묵’이었고, 기존의 방식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데즈카 오사무와 ‘극화’
‘도전과 응전’이 제대로 어우러진 라이벌 구도였다.
데즈카 오사무의 부각 이후로, 일본만화계는 그를 모방한 둥글둥글한 스타일의 그림체가 유행했다고 한다. <고르고 13>의 사이토 다카오도 소년 시절에, ‘둥근그림체 묘사’가 안돼 데즈카 오사무를 직접 찾아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극화’는 한마디로 ‘안티 데즈카’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와는 달리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묘미를 앞세웠는데, 내용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가 전반적으로 어린이를 주대상으로 하는 가운데, 웃음을 주목적으로 삼았다면, 극화는 대단히 냉소적이면서도 과격하다.
‘극화’의 탄생을 선언하는 그들의 ‘안내문’에도 나온 이야기다. 그들은 극화를 일컬어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필요한 오락독서물”이라고 선언했다. 주된 독자층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에는 없는 새로운 묘미를 찾길 원하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안티 데즈카’를 표방해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았으면서도, ‘중층적인 구성’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영향력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이토 다카오의 <고르고 13>이나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 부게이초> 등의 만화가 대표적인 ‘극화’들이다. 특히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설정한 <닌자 부게이초>는 학생운동권에 속해있던 대학생들이 애독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 작품을 통해 유물론을 접한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새로운 흐름은 곧 엄청난 유행으로 번졌는데, 이는 곧 데즈카 오사무에게는 엄청난 위기였다. 심지어 그의 조수들과 아들까지 그의 앞에서 꺼리낌없이 ‘극화’를 감상했을 정도였다는데, 한때 그는 만화가를 포기할 생각에 의학자로 되돌아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천상 만화가였다. 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응전’의 결과로 내놓은 작품은 바로 <블랙잭>이었다. <고르고 13>의 캐릭터를 분석해, 거기에 ‘망또’와 ‘무면허’라는 설정을 추가했고,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휴머니즘’까지 동시에 추구한 작품이었다. 아주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었던 ‘응전’이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