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건축 답사

2010. 12. 12. 09:02예술/etc.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주변환경과의 조화와 건물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엄청나게 신경쓰면서 건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자연을 지배하고 무시하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건축.

온고이지신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훌륭한 건축가와 훌륭한 건물이 많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집 앞에 정원 배치하고 연못에 비치는 경치 감상… 건물과 자연의 조화 강조

 
옛 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전 2권)
최종현 지음|현실문화연구 | 각 384, 344쪽|각 2만2000원, 2만원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산과 산봉우리가 마주 대하는 연결선의 축선(軸線)상에 건물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들은 다른 나라 건축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옛 건축의 주요 건물에서는 이 원칙을 대부분 지켰다. 주변에 마주 보는 산이 없어서 산과 산의 축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에는 산과 물의 축으로 했고, 물도 마땅치 않으면 나무를 심어서 산과 나무를 연결한 축선상에 건물을 배치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또 우리 전통 건축은 분지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분지의 사방에 있는 산봉우리들을 연결한 중심점에 가장 중요한 건물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석이다. 풍수지리에서도 이런 자리를 '명당(明堂)'이라고 한다. 하지만 산기슭처럼 경사가 진 곳에서는 중요한 건물을 높은 곳에 앉힌다. 신간 '옛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는 이를 우리나라 건축의 '정면성(正面性)'이라고 설명한다. 건축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정면성은 '정면에서 바라본 방향이 갖는 가치'를 뜻한다.

위부터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 강원 강릉의 허균 생가, 서울 경복궁 안 경회루 전경.
책의 저자인 최종현 한양대 도시설계학과 교수는 한국 건축사와 도시설계 분야의 전문가이다. 1970~80년대 대학강사 시절부터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하며 옛 건축을 공부했다. 조선왕조실록을 수차례 정독하고 사서(史書)에 파묻혔으며 선조들의 문집을 읽어갔다. 또 옛 지도를 분석하며 현재의 지형 및 건축과 비교했다. 이 책은 이렇게 여러 친우, 건축사무소 관계자들과 함께 다녔던 답사들의 기록을 토대로 만들었다.

'충남 해안 지역의 건축' 편은 예산의 추사 고택과 수덕사, 당진의 영탑사와 영랑사, 태안 백화산의 마애삼존불과 홍주사, 보령의 성주사지, 서산 마애삼존불 등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다. '강원도 관동팔경을 따라가는 여정' 편은 고성의 건봉사에서 출발해 낙산사~양양향교~경포대와 허균 생가~강릉 선교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소개한다. 전북지역의 관아(官衙) 건축, 경주의 도시계획과 터 잡기, 경남 덕유산 지역의 서원과 민가 건축 등도 알아보고 있다.

우리나라 건축의 또 다른 특징은 원림(園林), 즉 정원이 건물의 앞에 놓이는 것이다. '전원후사(前園後舍)'라고 해서 집에 들어서면 앞에 원림이 있고 뒤에 건물이 나온다. 사찰도 마찬가지여서 원림이 먼저 나오고 절은 뒤에 있다. 강원 춘천에 있는 청평사도 입구에 연못과 원림이 남아 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궁궐 건축이다. 우리나라 궁궐은 '전궁후원(前宮後園)' 방식으로 조성됐다. 궁궐은 건물이 먼저 나오는데, 이는 임금의 권위를 건축물로 상징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원림은 후원의 형태로 궁궐 뒤쪽에 조성됐는데, 이는 임금이 은밀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위부터 경남 거제의 옛 관아, 강원 동해의 삼화사, 강릉 선교장 안 황래정의 여름풍경, 강원 양양군 낙산사 의상대의 일출.

정원과 관련해서는 '차경(借景)'이란 개념도 주목할 만하다. 동양 건축에서 사용하는 원림 조성의 한 기법인데, 말 그대로 '풍경을 빌려온다'는 뜻이다. 서양 정원이 그 안에서 자연을 완벽하게 모방하려 했다면 동양, 특히 한국은 정원 밖 풍경과 더불어 볼 때 정원이 완성되도록 만들었다.

'차경' 이론은 원래 중국에서 왔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누각과 정자(亭子), 사찰의 원림에 많이 쓰였다. 차경의 중요한 요소는 연못이다. 정원 외부의 자연을 연못에 비춰서 보도록 한 것이다. 일례로 경복궁의 경회루를 들 수 있다. 경회루는 연못에 접해 있으며, 연못의 수면에 백악산이 비치도록 배치한 것이다.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도 차경기법을 볼 수 있다. 절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는 연못에 주변의 산이 비쳐 보인다.

저자는 우리 건축에 대한 주관적 해석과 정서적 접근을 배제한다. 전설이나 통념, 상식보다는 기록과 객관적 물증에 근거해 옛 건축을 바라본다.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길도 관련 부분에서 저자는 "윤선도는 문학사뿐 아니라 건축사에서도 중요하게 봐야 하는 인물이다. 그는 조선시대를 통해 토목 분야에서 가장 밝은 인물이었다. 풍수지리 문제로 송시열이나 왕실과 부딪히기도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윤선도가 서울을 떠나 주로 활동했던 지역은 보길도와 진도인데, 이 지역에서 간척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진도에 굴포라는 곳이 있다. 남동쪽 끝자락으로 윤선도가 간척을 한 지역이다. '굴포'라는 지명 자체가 간척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곳엔 윤선도의 사당도 있다." 굴포의 사전적 의미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이다.

읽다 보면 저자의 박학다식에 압도당하는 책이다. 우리 옛 건물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건축 답사 외에 보론(補論)으로 실린 '옛 지도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도시설계' '옛 산수화 속에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원림' 같은 글들도 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