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휴대폰 사업 종료

2021. 4. 8. 04:13전략 & 컨설팅/전략

갑자기 옛날 일들이 떠올라 주섬주섬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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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4078314g

 

LG전자 권봉석 "휴대폰 철수 애석해…도약 위한 결단"

LG전자 권봉석 "휴대폰 철수 애석해…도약 위한 결단", 권 CEO, 모바일 본부 임직원에 사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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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정보통신이던 시절, 이 회사의 미래전략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다. (1999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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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퀄컴이란 회사가 개발한 CDMA방식의 규격을 세계최초로 상용화하는 호구짓을 해서 아직은 휴대폰의 제조와 판매에서 국내 비중이 상당히 높았었다. 세계적으로는 지금 정확한 수치는 기억 안나지만 GSM 방식이 거의 70%~80% 사용되는 그런 시절이었고, 당시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부가 유럽에서 GSM 방식의 휴대전화 매출을 어느 정도 거두기 시작했고, LG는 GSM 시장에 들어가야 되냐 마냐를 고민하던 그런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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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CDMA를 호구짓이라고 한 이유는 사실 퀄컴과의 협상이 너무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하는데, 퀄컴은 한국이 베푼 걸 생각하면 아침 저녁으로 큰절을 올려도 모자랄 것이다. 요새 퀄컴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겠는데, 퀄컴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지분의 99%는 한국의 흑우짓이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중에 기회되면 한 번 자료 조사도 하고 해서 더 써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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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당시 여러가지 제안을 했었는데, GSM 시장에도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미국은 당시 CDMA도 일부 존재하는 시장이었는데 북미 시장도 들어가야 한다고 했었다. 또한,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잘되는 이유중의 하나가 독립된 회사가 아니라 삼성전자의 유통망을 사용하는 것이 크다고 진단, LG정보통신도 LG 전자에 합병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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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때 분위기가 우리나라 휴대전화는 작아서 손이 큰 미국애들이 싫어하고,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LG 정보통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미국에 손 큰 애들만 있는가, 라틴계 비중이 높은데 그 쪽은 우리나라하고 비슷하다. 그리고 휴대성을 생각하면 작은 전화기가 더 잘 팔리 수 있고 디자인적으로도 우월하다고 argue했었다. 내가 당시 가장 쫄병이었는데 우리 컨설팅 팀 모두가 내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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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서 잘 안팔리는 이유를 그런데서 찾았던 것 같다. (비겁한 변명) 그게 사내의 상식이 되어버리고. 다른 업종이나 기업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그래서 해봤어?'라고 늘 물어보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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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여러가지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컨설팅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그 후 몇 달인가 뒤에 LGIC가 LGE로 통합된다는 것을 뉴스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했던 컨설팅의 결과물을 뉴스에서 확인하는 뿌듯한 감정을 느꼈었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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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LG가 컨설턴트 말만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 낮은 회사는 아니다. 본인들이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했었던 거겠지만 그래도 컨설턴트로서 그런 큰 결정에 대해 먼저 Initiate하고 영향을 조금이라도 줬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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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쓰는 이야기는 매우 rough한 흐름이고 일부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그냥 막 쓰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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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러고 나서 2009년 가을에 이번에는 LG전자 오산 사업장에서 SCM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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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략이 아니라 Operation이라서 복잡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어쨌든 예측, 구매, 생산의 사이클을 도는데 ERP의 정보와 실제 업무 정보가 불일치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팀에서 어느 정도 개선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본질적인 해결은 되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 프로젝트도 3번째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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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은 노트북이나 가전 같은 것도 만드는 사업장이었는데 가장 문제가 큰 것은 MC사업부였다. 워낙 사이클이 짧고 변동이 심해서 오류의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삼성전자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긴 했었는데, 우격다짐으로 LG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좀 깊은 이야기는 아무래도 고객 정보라... 여기서 쓸 수는 없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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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당시에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MC 사업부가 잘 안되는 이유중의 하나가 그 유명한 맥킨지 컨설팅 결과로 스마트폰을 포기했던 거라는 거. 그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그 당시에도 LG는 뉴초콜릿인가? 지금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히트 쳤던 피쳐폰을 길죽하게 늘여서 왕성하게 마케팅을 하고 있었었다. 내 과제가 SCM 쪽이라 마케팅 쪽은 들여다 보지 않았지만, 당시에도 참 안될 결정만 한다고 느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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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썼었던 초콜릿. 이건 히트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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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초콜릿은 괴랄했다: 21:9 화면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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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때는 대세가 스마트폰이 될게 뻔했는데 LG는 회사 전략이라며 피쳐폰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나마 피쳐폰이 뭔가 10%씩 부족한 그런 것들이 나오고 있었다. 다양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회사가 R&D를 강조한다고 KPI를 이상하게 돌린 게 컸던 거로 기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투명폰이었는데,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획기적이라고 박수 치고 연구한 사람들이 보상도 많이 받았는데, 막상 양산에 들어가니까 불량률이 막 80%씩(?) 나고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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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산은 양산의 책임이고 연구개발의 책임이 아니라고 그냥 넘어갔다고.  이건 정말 잘못된 운영이다. 획기적인 것만 개발하면 보상받고, 양산은 양산책임일 뿐이라는 건 연구개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디자인부터, 연구개발까지 양산을 고려해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폰이 혁신적인 제품이었지만, 동시에 SCM과 양산의 효율성을 극한까지 추구한 제품이기도 했다. 그래서 성공했던 거다. 이렇게 통합적으로 보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서로 견제까지 하는 그런 문화가 LGE가 휴대전화를 결국 포기하게까지 만들었던 그 수많은 요인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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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냥 옛날 기억 되는 대로 쓰는 거니까 논리와 형식과 근거를 갖춰서 자세히 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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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LG는 백색가전은 정말 잘 만드는데, 첨단제품은 약하다는 것이 이런 기업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Integration이 중요한데, 너무 고리타분하다고나 할까? 본인들은 획기적인 거 좋아하고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상업적 성공까지 간게 거의 없다. 그러니까, 컨셉은 잘 만들어내는데 뒷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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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같이 집요한 시어머니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전략만 머리 속에 있고 머리만 굴릴 줄 알지 밑에 현장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 가득이었다. 아.. 심한 표현은 자제해야겠다. 그냥 내 개인적 생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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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삼성이 전략적이고 LG가 현장쪽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도 한 측면에서는 맞지만, 나는 오히려 LG 사람들이 전략에 너무 치중하고 운영 현장은 따로 돌아가는 것을 봤다. (맥킨지의 깊은 그림자) 삼성은 일본식으로 현장과 경영진이 거의 한몸처럼 돌아가는데, LG는 미국 스타일이고 중간에 단절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쁜 점 하나가 현장을 천시하고 관리직이 되면 꾀를 부리고 일을 안할 수록 자기가 더 귀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는 그런게 있다. 삼성은 그게 덜했고, LG는 한국 사람들 평균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전략적으로 머리 쓰는 것만 더 인정 받는데, 문제는 현장과 괴리되니까 그 전략이 제대로가 아닌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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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까 1999년 LG 정보통신 프로젝트때 옆팀 팀장이던 형이 지금 LG에서 사장이다. 그 형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 지 궁금하네. 많이 바쁠테니 내가 용건도 없이 연락을 하기도 그렇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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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가 저력은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어 프라다폰은 정말 획기적이었고, 스티브잡스가 그걸 베껴서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만들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 였지만, 그냥 행사처럼 지나가 버리고 시장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폴더폰도 LG가 먼저 만들었고, 최초의 PDA도 LG가 만들었었고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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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LG의 휴대폰 시대는 공식적으로 지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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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까운 사업이다. 지금도 LG의 사업들에서 휴대폰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는 매우 큰데... 아마도 '전략적으로' 답 없는 B2C를 포기하고 가진 휴대폰 관련 기술을 B2B 분야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정한 것 같다.  내 직관으로는 잘못된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LG가 지난 10년간 노력을 안한 것도 아니고, 할만큼 했는데 안되니까 포기한 것으로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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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간은 Healthcare와 Finance 등에 몰려 있어서 내 직관이 틀렸을 수도 있다. MC 사업부를 매각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쩌면 지금도 협상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간을 보니까 우리 그 가격에 그 조건이면 그냥 차라리 분해시키고 사업 접을래... 라고 보여주는 중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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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사업을 종료해 버리면, 인력, 재고, 시설, 장비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정리해고가 안되는 우리나라의 법체계 하에서, 사업 종료는 기나긴 합법적 해고를 위한 장정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특히 관리직은 완전 중복이라 어디 쓸 곳도 없는데 인건비 부담을 계속 안고 가야 한다. 퇴직금을 얼마나 챙겨주면서 내보낼지가 관건인데, 정부 눈치도 봐야하지, 노조 눈치도 봐야하지, 회사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LG가 삼성처럼 돈을 팍팍 쓰는 데도 아니고. 근데 내가 누굴 걱정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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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반도체 (지금 하이닉스) 도 그렇게 뺐겨서 그룹 사업에 애로가 많은 걸로 아는데, 혹시 휴대폰 사업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반도체가 있고 없고는 LG에게 큰 차이가 된다. (물론 사이클에 따른 큰 투자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는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반도체 보유의 장점은 더욱 크기에...)  가까운 미래에 휴대폰이 없다는 것이 아쉬워 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모르겠다. 물론 인력과 시설은 일단 사내에 남겠지만, 사업부로 남는 것과 달리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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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부터의 기억들을 일부 살짝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