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2017. 1. 17. 16:56철학


불교의 기본 개념의 하나이다. 나와 세계의 모든 것들은 서로 인연하여 생겨난다는 이론이다. 불교의 창시자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이 연기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떤 이들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나 원리로서 이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반면에 불교의 우주관 내지 인간관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직접적인 요인과 간접적인 요인들이 서로 의존하여 생겨난다고 한다. 따라서 사물의 생성에 관여한 조건들, 혹은 구성 요소들 외에 어떠한 절대자나 근본 원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연기 사상을 통해 붓다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만물을 생성하고 주재하는 초월적 존재도 없고, 또 만물에 내재하는 영속적이고 불변적인 실체나 본질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붓다는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나 불변하는 실체와 같은 것에 대한 그릇된 믿음과 집착이 세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로막고, 그로 인해 모든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붓다는 연기의 이치를 보는 자는 법[진리]을 본다고 말했는데, 바른 인식이야말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기 - 밀린다팡하 [pratītya-samutpāda, dependent arising, 緣起]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인도라고 하면, 세계의 근원에 대해 뱀, 거북, 코끼리가 층층이 쌓인 이미지가 떠오르긴 하는데, 싯다르타는 관계론적으로 파악한 것 같다. 


얼마전 주방에서 쓸 식기 거치대를 조립했다. 설겆이 끝나면 놓는 용도로 쓰이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2단 선반이라고 하면, 이미지가 떠오를지? 


볼트/너트/접착제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힘에 의해 구조물이 완성 되었다. 


양 측면 각 1개씩 2개. 2단의 선반 1개씩 2개, 이 4개를 조립하니 마지막 파트를 끼우는 순간 서로 힘을 주면서 탄탄한 구조물이 탄생했다. 이게 어설프게나마 연기 아닐까? 


버트란드 러셀은 세계의 근원을 생각 하면서, '그럼 뱀을 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고민에 빠졌었다. 사실상 우리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셈이니 중력 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연기, 혹은 구조론은 적어도 인도의 뱀/거북/코끼리 층층구조 보다는 훨씬 설명력이 높아 보인다. 


아마 싯다르타가 깨달은 진리는 어떤 신적인 존재나 그에 준하는 요인에 의한 세계가 아닌, 서로에게 의존하며 자립해 있는 그런 세계였겠지. 충분히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대전환적 사고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신적인 존재가 있으면서도 구조는 서로간의 관계에 의해 구성된 세계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사족이지만, 말씀으로 이런 세계를 만들 수도 있을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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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중요한 이유는, 이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제석천의 거처에 있다는 인드라의 그물 이야기가 있다. 




" 그 그물은 한없이 넓고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구슬에는 우주 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 삼라만상이  투영된 구슬들은 서로서로 다른 구슬들에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된다. 작은 구슬은 큰 구슬에, 큰 구슬은 작은 구슬에 투영된다.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투영된다. 인간의 구슬은 자연의 구슬에, 자연의 구슬은 인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시간의 구슬은 공간의 구슬에, 공간의 구슬은 시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관계를 이룬다. 또, 그 구슬들은 그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의 모습과 같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추어 주는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 


이렇듯 이 세상 모든 법이 하나하나 별개의 구슬같이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다른 것들과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다른 것 모두와 빛을 주고받으며 하나를 이루고 있다. " 


- 화엄경華嚴經 - 




대립적 이분법의 시각에서 변증법으로 나아가는 것도 발전이고, 


거기서 다시 연기론으로 나아가서 통합을 모색하는 것은 더욱 큰 발전이다. 


닭, 순실, 기춘, 병우 등등.... 닭사모, 어버이연합, 등등... 미국, 중국, 북한, 트럼프, 아베 등등... 


화도 내봤고, 저주해 보기도 했고, 욕도 해봤다. 


제석천의 그물에 비춰 보니 다 사람 사는 거더라. 


그들이 있기에 자유와 민주가 소중함을 알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소중함을 알게 되더라. 


이런 깨달음이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고, 또 다시 어이없는 현실에 화내고, 욕하고, 절망할 수도 있지만...  


오늘 소중한 깨달음이 있었음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