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코트카반도에서 부르는 연가
2015. 7. 17. 00:37ㆍ예술/etc.
https://kr.rbth.com/ '러시아비욘드'에서 가져온 사진
추코트카반도에서 부르는 연가 시월은 가장 쓸쓸한 달,
그대가 만약 추코트카반도에 가게 된다면
그건 베링해의 우울한 샹송을 가슴으로 듣는 기회가 될 거예요
순록들은 두툼한 고요를 몸에 두륵고
한 뿌리 한 뿌리의 이끼를 뜯으며
짧은 툰드라의 여름을 건너온 밤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 밤이 물러가고 나면
주위엔 온통 어슬렁거리는 짐승들의 영혼과
추억을 쫓는 사냥꾼들의 휘파람소리가 넘쳐날 거예요
몇 날 며칠의 백야와
바알간 심지 돋우는 램프의 사자와
그 불빛 아래 쪼그리고 앉은 생의 고단함이
허공에서 그댈 부르겠지만,
그건 그대가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대의 마음을 뛰쳐냐와 오로라처럼 배회하는 것이라고
믿으세요
그런 밤엔 사냥꾼의 칼날이
먼 바다에서 온 바다표범의 비명을 자를 거예요
순록떼의 꿈이 벼랑을 타고 있다고요?
그럴 땐 청각을 깊이 묻으세요
거기
내 슬픔의 백야
그 얼음집 밖으로 올가미를 던지는
사냥꾼의 밤을 소리 없이 걸어가 보세요
갈라진 슬픔 부드럽게 감추고
당신의 가장 우울한 샹송을 연주해 주세요
제 짝을 얼음 바다에 붇고 춤추는 축지족 젊은 사냥꾼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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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1958~ ), 2013년 2월 첫 시집 '이슬의 지문' 에서.
시인은 현직 경찰관이고, 시집을 낼 당시 서울 중부경찰서 생활안전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다른 시들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이 시만 봐도 상당히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베링해의 우울한 샹송을 가슴으로 듣고 싶다.
참고:
축지족은 축치족이 아마 바른 표현인 것 같다.
우리 민족과 같은 뿌리로 생각 되어지는 추콧카 반도의 반유목 원주민이다. 현재 인구는 약 1만 5천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