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9. 14:11ㆍ예술/etc.
나보다 딱 200년 먼저 태어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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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쥐뿔 아는 것도 없지만 횔덜린 하면 저렇게 무리 속에서 혼자 날개짓하는 비둘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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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로 들어갔던 집의 부인에게서 이상형을 발견하여 사랑에 빠지나, (26세 때)
2년 여만에 소문이 퍼지고, 남편이 알게되어 모욕을 당하고 쫒겨난 후,
약 3년 후 그 부인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정신 분열에 빠져 그 이후 40여 년을 정신병으로 고통 받다 죽다.
부인과의 사랑은 손을 잡는 정도 였던 것으로 휠덜린의 표현에 의하면
' 이 비참한 시대에 나눈 영원하고 성스러운 우정' 이었던 것.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의 사랑이 이런 비극으로 끝난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는 지도 모른다.
안톤 슈나크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휠덜린의 시'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튀빙겐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헤겔, 셀링과 친한 친구로 지낸다.
휠덜린도 헤겔, 셀링에 못지 않은 날카로운 직관과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다만, 그는 그것을 시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사실이다.
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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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363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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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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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고요히 쉬고 있는 도시. 불 밝힌 골목길도 조용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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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을 단 마차들이 덜거덕 거리며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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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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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구여! 우리가 태어난 것은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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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머리 위 저 위쪽 세계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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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그들은 끝없이 힘을 미치며, 우리가 살아 있는지에 대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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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리를 그토록 아끼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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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그릇이 언제나 그들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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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만 때때로만 신성의 충만을 견뎌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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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생은 한낱 그들에 대한 꿈일 뿐이다. 하지만 방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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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처럼 도움이 되며, 고난과 밤은 강한 힘을 키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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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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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에 시인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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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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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용히 감사할 일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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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지상의 열매이면서 빛의 축복을 받은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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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의 기쁨은 천둥의 신이 내려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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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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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휠덜린
뱃사람은 즐거이 고향의 고요한 흐름으로 돌아간다,
고기잡이를 마치고서 머나먼 섬들로부터.
그처럼 나도 고향에 돌아갈지니,
내가 만일 슬픔과 같은 양의 보물을 얻을진대。
지난날 나를 반기어 주던 그리운 해안이여,
아아, 이 사랑 슬픔을 달래줄 수 있을까.
젊은 날의 내 숲이여 내게 약속할 수 있을까,
내가 돌아가면 다시 그 안식을 주겠노라고。
지난날 내가 물결치는 것을 보던 서늘한 그 강가에
지난날 내가 떠 가는 배를 보던 흐름의 그 강가에
이제 곧 나는 서게 되리니 일찌기 나를
지켜 주던 그리운 내 고향의 산과 산이여。
오오, 아늑한 울타리에 에워싸인 어머니의 집이여
그리운 동포의 포옹이여 이제 곧 나는
인사하게 될지니, 너희들은 나를 안고서
따뜻하게 내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리라。
진심을 주는 이들이여,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안다네,
사랑의 슬픔 그것은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의 위로의 노래 부르는 요람의 노래는
내 마음의 이 슬픔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하늘의 불을 주신 신들이
우리에게 신성한 슬픔도 보내 주셨나니,
하여 슬픔은 그대로 있거라, 지상의 자식인 나는
모름지기 사랑을 위해, 또 슬퍼하기 위해 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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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폐하”라고 호칭하며, 자신을 “스카르다넬리 Scardanelli” 라고 했다. 이 가명의 정확한 뜻은 모르며 몇 가지 추론이 있을 뿐이다. 그의 말년에, 정신병자인 그를 받아 준 목수의 집 2층 조그만 탑에 머물러 살던 시절, 횔덜린은 스카르다넬리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작품을 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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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르다넬리라는 서명이 달린 시들에, 그는 상상속의 날짜를 써놓곤 했다. 가장 이른 것이 1648년, 가장 늦은 것이 1940년이었다. 광인의 기행일까? 모르겠다. 다만 그는 현실의 암울한 한계 속에서 시를 통한 자유로운 종횡을 상상 속에서나마 이루었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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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가 횔덜린의 시를 철학적 언어로 재해석 하던 시기가 1940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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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펠트의 어학자, 크리스티안 외스터잔트포르트 Chr. Oestersandfort는 시인이 자신을 비하하기 위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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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르단”은 발음상으로 “Scharlatan (야바위꾼, 협잡꾼, 돌팔이 의사)”을 연상시키며, “elli” 라는 접미사는 “놈”과 같은 인간 비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횔덜린은 자신을 “겸허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자”라고 명명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사실 횔덜린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깍듯이 인사하며, 친필 원고를 건네주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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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르다넬리가 무슨 뜻일지 궁금해서 찾아 보다가, 아래 블로그에서 내용을 가져오고 내 생각을 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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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Das Schicksal 中 일부 (묘비에 쓰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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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중 가장 성스런 폭풍 가운데
나의 감옥의 벽 허물어지거라.
하여, 보다 찬란하고 자유롭게
내 영혼 미지의 나라로 물결쳐 가라 !
[출처] 휠덜린, 그를 그리며...|작성자 H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