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영의 참모들

2014. 9. 21. 09:59책 & 영화

매우 일본적인 제도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퍼져 있고. 프랑스도?

 

군토구미같은 행태는 사람을 매우 편협하고 까다로운 인간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도 자칫 잘못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지금 고생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저런 인간이 되느니... ㅎㅎ

 

전범재판에 나온 세지마 류조 (소설 불모지대 주인공의 실존 모델, 이토추 상사 회장)

.

세지마 류조도 똑똑했지만 어쩔 수 없이 오만했던 엘리트 대본영 참모였는데, 태평양 전쟁후 11년간 러시아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게 그의 일생에서는 큰 복이었을 수도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904361 

 

대본영의 참모들

[대본영의 참모들]은 지난 세기 동북아 일대를 뒤흔들었으며 여전히 휴화산과 같은 존재인 일본군, 특히 일왕조차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던 핵심 참모들의 역사와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book.naver.com

위톈런 '대본영의 참모들'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를 일본에서는 '15년 전쟁'이라고 부른다. 아시아 전역을 긴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만주사변을 일으킨 주범은 관동군 작전참모 이시와라 간지 '중좌'였다. 소련·몽골 연합군을 상대로 눠먼한(諾門罕) 전투를 일으켜 작전에 참가한 2개 대대를 몰살시킨 장본인은 '작전의 신(神)'으로 불리던 관동군 작전참모 쓰지 마사노부 '소좌'였다.

군사령관, 사단장 등 장관급 지휘관이 건재한 상태에서 어떻게 일개 좌
관급 참모들이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이처럼 중차대한 작전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위톈런이 쓴 '대본영의 참모들'(나남)은 이렇듯 월권과 항명을 서슴지 않았던 대본영 참모들의 대단한 '활약상'과 이러한 광기어린 수퍼 엘리트 집단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군의 구조적 모순을 조망한 책이다.

일본군의 참모는 일종의 자격이었다. 육군대학 졸업생만이 참모가 될 수 있었다. 1883년 1기를 시작으로 1945년 60기를 끝으로 폐교될 때까지 육대의 전체 졸업생은 3000여 명에 불과했다. 한 기수에 대략 50명 내외였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성적 상위 20%의 현역 장교들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졌다. 육대 졸업 후 10년이면 반드시 대좌가 되었기 때문에 '10년 인사'라는 말이 있었다.

 
육대 졸업생 중 성적 상위 6명에게는 천황이 군도를 하사했기 때문에 '군토구미(軍刀組)'라 불렸다. 군토구미는 중장으로 예편한 것을 관운이 없었다고 아쉬워할 만큼 육군 내에서 특권을 누렸다. 이시와라 간지, 쓰지 마사노부, 도조 히데키 등 '15년 전쟁'을 일으키고 주도한 인물들은 대부분 육군대학을 졸업한 '참모'출신이었고, 그중 대다수는 군토구미였다.

그렇다면 수퍼 엘리트이자 특권층이었던 육대 출신 대본영 참모들은 기대했던 대로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했을까? 위톈런은 그들이 흔히 자기 재능을 믿고 남을 깔보는 안하무인인 태도를 보였고, 시야가 극도로 좁아 상식에 어긋나는 작전 명령을 내리기 일쑤였다고 비판한다. 20대 후반 육대 성적으로 20여 년 후 장군 진급까지 결정하는 인사 관행도 참모들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었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기고만장해서 상사를 능욕하고 부하를 속일 뿐 아니라 늘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서 계속해서 패착을 두는 사람을 가리켜 '대본영 참모'라 부른다고 한다. 수퍼 엘리트 집단의 순혈주의와 특권의식은 조직의 발전은커녕 조직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