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1. 10:10ㆍ전략 & 컨설팅/국가정책
난 이분에 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뉴스를 통해서 이래저래 소식을 듣고 있긴 했다.
외국에서 와서 국내에 인맥도 없는 사람이 상징성 있는 KAIST를 개혁시키려 하다가 두들겨 맞고 결국 퇴임한다... 는 스토리이긴 한데,
불통을 자꾸 지적하길래 MB와 비슷한 종류인가 했더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내가 볼때는 오히려 잘한 일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 진행을 지혜롭게 했는냐는 의문의 여지가 크나, 문제의 정의와, 그 해결을 위한 대략적인 방향성은 맞게 잡았다.
다만, 그게 기득권 세력에게, 그리고 보다 치명적으로는 대다수의 평범한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았기에.. 결국 불명예 퇴진까지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MIT 기계 공학과 학과장에 석좌 교수면 그 능력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부터 미국에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한국적인 사고 방식 보다는 미국적 사고 방식에 더 익숙했을 수도 있겠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사실 학교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600만원이나 하는 징벌적 등록금을 물린 논리도 뭔지 이해는 간다. 그런데.. 학벌이라는게, 졸업장이라는게,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 못하신듯 하다. 아무리 병신같은 생각이라도 그게 현실이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고,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걸 그렇게 시행하기 보다는 좀더 현실을 고려한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겠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한국 사회이고, 서남표 총장의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길러지지 않은? 혹은 살아오지 않은 학생들이다. 한국 토양에서는 아직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다.
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있지 않고서는, '한국을 이끌어갈 과학자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당위성만 가지고 진행될 일이 아니었다.
아..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Snob Zoning 문화, 기득권 세력의 뻔뻔하고 끈질긴 자기 보호 (타인을 기꺼이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자기들도 그 피해자이면서 기꺼이 그러한 구조에 동참하고자 갈망하는 철학부재의 대중들..
갑을 문제니, 상생이니, 대기업 횡포니 등등은 이런 근본에서 나온 현상에 불과하다...
2011년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촉발된 '카이스트 사태'를 취재했던 기자가 보기에,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은 불통(不通)의 아이콘이나 다름없었다. 당초 그의 개혁을 지지했던 상당수 교수와 관료들조차 차례로 등을 돌렸다. 사태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려는 서술 방식이 뚜렷한 이 자서전에서도 상황을 악화시킨 데 대한 반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2006년부터 올해 2월까지 카이스트의 13·14대 총장을 맡았던 그의 '개혁'이 한국의 교육계와 사회에 남긴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차등 수업료, 영어 수업, 교수 평가 강화의 결과 대학의 질(質)은 급격히 향상됐다. '경쟁'과 '세계화'라는 화두가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여러 사람이 만류했던 것이 교수 정년 보장(테뉴어) 심사 강화 정책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라면 올림픽위원회의 룰에 따라 세계무대에서 경쟁해야지, 교수라고 해서 느슨한 국내용 룰의 보호를 받아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서 그걸 밀어붙였다고 했다. "최고 명문대 교수들은 서로 전공이 다르더라도 만나면 기본적으로 학문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 교수들은 골프 이야기를 한다"는 말도 한다. 현대 학문이 추구하는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 사회에 만연한 '계층의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교직원 식당에서 교수와 직원들이 따로 앉아 밥을 먹는 풍경을 그는 이렇게 썼다. "무슨 보이지 않는 줄이 가로놓여 있는 듯했고, 한국 교수들이 필요 이상의 특권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박사학위? 3년 동안 돈 쓰고 고생 조금 하면 누구나 딸 수 있다." 한때 그를 미워했던 사람들조차 곰곰이 곱씹어봐야 할 고언(苦言)들이다.
■ 계약해지안 상정된 서남표 KAIST 총장
'대학교육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KAIST 서남표 총장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 놓였다. 이사회가 사실상의 해임안인 계약해지안을 상정해 20일 처리할 예정인 가운데 카이스트 교수협의회는 18일 임시 총회를 열어 상정안 가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총학생회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5월 학부생 설문조사에서 서 총장의 사퇴에 찬성하는 의견이 75%였다"며 역시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15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교내 인공위성센터 주변에 있는 서 총장 공관을 찾아 해임안 상정에 대한 생각과 그동안의 학내 사태에 대한 의견,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서 총장은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처럼 오히려 표정이 편안하고 밝아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자신의 생각을 단호하게 밝혔다. 그는 "이사회에 자신의 계약해지안이 상정된 것은 일부 교수집단과 교육과학기술부가 개혁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KAIST 이사회가 2년 동안 30여 차례 사퇴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나에게 학교 장래나 교육에 대해 이사회에 얘기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ㅡ계약해지 상정됐단 말 듣고 어땠나.
"예상했던 일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처음일 거다. 놀라운 일이지만 이사회가 단 한번 학교 장래나 교육에 대해 얘기해본 적 없다. 그동안 나가란 말만 30여 번 들었다. 학생들이 자살하기 시작하자 국회에서 질타를 당하고 있는 동안에도 메시지를 보내 사표 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사회가 끝날 때 쯤엔 늘 개혁을 지지한다고 했다."
ㅡ왜 해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고 보나.
"교육과학기술부가 나를 몰아내고 싶어 했다. 나는 장관이나 관료들을 거치지 않고 예산을 따오기도 하고 전임 총장들처럼 (관료들에게) 몸을 낮추지도 않아서 미웠을 거다. 관료사회 관행을 다 따르다가는 제대로 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년 전 연임 때 교과부가 적극 반대한 이유다."
ㅡ학내 교수들도 연임에 많이 반대했다.
"연임 이후 교과부와 뜻이 잘 통하는 이사장이 오니 KAIST의 교수협의회도 눈치를 채고 나를 축출하는 운동에 나섰다. 내가 와서 불편해진 사람이 많다. 테뉴어(정년보장) 심사가 강화돼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하는 교수들이 힘들어졌다. 학과장중심제(독립적 결정권이 강한 학과장제)가 도입돼 젊은 교수들이 인사와 인센티브 등에 대한 각종 권한을 쥐게 되자 나이 든 교수들은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총장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이었다. 현 교수협 회장을 비롯해 축출 운동 주도 교수들 가운데 과거에 총장 선거에 단골로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사람들이 꽤 있다."
ㅡ교수사회 기득권이란 무얼 말하나.
"KAIST 일부 교수들의 기득권과 특권의식, 카르텔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학연과 지연, 연고로 뭉쳐 마치 면책특권이 있는 것처럼 확인되지 않은 의혹(서 총장이 박모 교수의 특허를 가로챘다는 주장. 경찰 조사에선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으로 마구 공격한다. 한 가지 의혹이 해소되면 다른 의혹(교수 채용과정 특혜, 재정손실 등)을 내놓는다. 어느 하나 사실인 게 없지 않았는가. 대학개혁의 아이콘이니 독선적인 총장이니 하지만 나도 그들의 벽을 넘기는 힘들었다."
ㅡ2010년 연임 때 2년만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이 돌았다.
"연임할 때 (4년 임기지만) 2년만 하면, 표를 주겠다거나 학교일을 적극 돕겠다고 한 이사나 교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구차하게는 하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결국 이사회에서 16대 2로 연임됐다. 당시 교과부 장관이 4년 임기의 임명장을 보내왔다. 이렇게 법적으로 임명된 총장을 도중에 내보내려면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사회는 아무런 이유를 대지 못하고 있다. 해임안을 상정했다가는 소송에 휘말릴 것 같으니 편법을 써서 계약해지라는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ㅡ이번에 차라리 해임해 달라고 요구했다는데.
"KAIST 총장이 안정적으로 직책을 수행할 수 있어야 앞으로도 좋은 총장, 유능한 교수가 올 수 있다. 한홍택 KIST 원장도 나갔는데 얼마나 압력이 심했겠는가.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이렇게 압력을 받았으면 벌써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가지 않는 것은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니다. 법적 근거도 없이 마구 총장을 쫓아내는 KAIST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런 문화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길 바란다. 내가 희생을 당하면 이번에는 몰라도 그 다음에는 이런 시도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ㅡ미국에서도 해임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과민반응 하는 것 아닌가.
"미국과학재단(NSF) 부총재 시절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기계공학과장 시절 그랬다. 하지만 한국과는 크게 달랐다. 여기(한국)에서처럼 없는 것을 만들어 공격하진 않았다. 미국에서는 조작은 엄벌을 받기 때문에 엄두도 못 낸다. 조작으로 개혁에 반대하니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논리가 맞으면 인정된다. NSF에 가서 개혁을 하니 반대하는 교수 1600명이 '미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기술자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남표 퇴진을 요구했다. 백악관에 퇴진 요구서를 보냈다. 백악관이 NSF에 그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하지만 목적이 옳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퇴진 요구서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하지만 반대했던 그들이 모함은 안했다. 서남표가 NSF를 재조직 했는데 마음에 안든다는 것이고 그건 사실이다."
ㅡ구성원과 소통이 부족한 탓은 아닌가.
"(교수 등을) 고소했기 때문에 학내에서 인기가 뚝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하지만 긴 눈으로 보면 잘했다고 본다. 고소 전에 서남표가 절대로 고소 못한다고 교수협이 단언했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통은 일방이 하는 게 아니다. 마음에 들면 한번 만나도 소통이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 번 만나도 불통이라고 한다. 학교 총장이라고 소통의 장을 강제로 마련할 수는 없다. 소통위원회 등을 수차례 제안했지만 교수협이 거부했다. 교수 고소만 해도 학내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를 거부하고 의혹만 부풀리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사회는 이런 사실은 외면하고 '시끄러우니 물러나라'고 한다."
ㅡKAIST에서 이룬 성과는 뭔가.
"지난 6년간 200위권이던 세계 대학 평가가 60위권대로, 공과 대학 순위는 20위권에 들어섰다. 재임 전 51억 원이던 기부금이 1700억 원대로 늘었다. 인류의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EEWS(에너지, 환경, 물, 지속가능성)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젊은 교수들이 대거 영입되면서 5년 내에 폭발적 성장을 이룰 것이다. 무엇보다 성과는 교수나 학생이나 세계적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적으로 경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과학기술은 한국의 차원이 아니라 인류의 차원이다. 그러려면 세상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영어강의를 시작한 것이고. 세계적으로 성장하려면 교수들도 세계로 나가야 한다. 카이스트 교수가 국제회의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세계적인 학자가 되겠는가."
ㅡ성과도 있었지만 문제도 많지 않았나.
"자살사건이 가장 마음 아프다. 일반계 고교에서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학생 가운데 일부가 적응하지 못했다. 입학 후에 특별히 배려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똑똑하니 들어와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책이었다. 자살한 이유는 복잡하다. 일부는 학생과 학부모의 명예를 고려해 진실을 밝히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모두 성적과 심리적 압박으로 보도되면서 공격을 받았다. 오히려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미국 대학들도 자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탠퍼드대학도 긴 보고서를 냈는데 읽어봐도 해결책은 없었다. MIT도 알아보니 자살한 학생들은 교내 병원에 상담하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자살한 학생 가운데 2명은 잘 알고 지내던 교수의 자제였다. 한마디로 앞으로도 자살 사건은 안 날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ㅡ과학계에 쓴 소리 많이 했다. 그래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우리 집사람은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나쁜 의도는 아니다(웃음). 과학기술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말만 해서는 안 되고 싫은 소리도 해야 한다. 할말은 해야 한다. 나는 한국말이 서툴러 말을 빙빙 둘러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어로 말한다 하더라도 성격상 그러지 못한다. 나는 앞뒤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실수도 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하지 못한다. 그런 말 했다가는 매장 당한다. 하지만 나는 나이도 많고 미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ㅡ한국사회를 보고 느낀 다른 문제점은.
"기득권 세력의 문제점이다. 미국에서는 어렵게 태어나서 성공한 사람이 많다. 모든 사람에게 비교적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느냐가 일평생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안타깝다. 대통령들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당선된 사람들 많아 참 다행이다. 하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고위관료 등은 특정 고교 와 대학의 졸업생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왜 그런 좋은 자리에 가 있는가. 능력 본위가 아니고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한 문화 때문이다. 한국이 잘되려면 능력본위가 돼야 한다. 카이스트에 일반계 고교생들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것도 기득권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카이스트는 국민의 학교이고 나라의 학교이다. 누구나 카이스트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런 학생 가운데 자살한 학생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과학고에 가려면 그래도 과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못 간다. 돈이 없어 중학교에서 과학고에 못갔다 하더라도 카이스트에 올 수 있도록 일반계 고교생을 선발한 것이다. 머리가 좋지만 환경 때문에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젊은이들이 카이스트에 오게 하고 싶었다."
ㅡ로버트 러플린 전 카이스트 총장은 계약 연장이 안된 후 한국을 떠나면서 다음 총장에게 뭐라고 충고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한국에 와서는 일을 하지 말라"고 권하겠다고 했다. 기억나나.
"아 그가 그랬나(웃음). 하지만 나는 그런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한국에 훌륭한 총장이 와야 한다. 패거리 문화로 남을 공격하는 것이 좋은 총장이나 석학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앞으로 고치면 된다."
ㅡ해임될 위기인데 한국생활이 후회되나.
"6년간 일할 수 있었으니 여한은 없다. 조국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이뤘다. 미국에 있을 때 KIST 원장과 포스텍 총장 등을 제의받았지만 미국 정부에서 일하느라 기회를 놓쳤다. 우선 한국 국민들에게 굉장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국민적으로 지지를 해주지 않았다면 2년 정도 하고 밀려났을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뒤에서 후원하고 지지해주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책도 쓰고 국제회의도 참석할 것이다. 계약해지가 결정되면 유예기간인 90일 동안 한국대학의 발전방안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소통없는 개혁… 문제 제기하면 패배자 푸념 취급”
■ KAIST 교수협의회장 경종민 교수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강하게 주장해온 경종민 KAIST 교수협의회장(전기전자공학과 교수·사진)은 “우리 교수협의 사퇴 투쟁을 실력 없는 패배자들의 푸념처럼 치부하는 데 가장 화가 났다”고 밝혔다. 학회 참석차 캐나다 출장 중이던 경 회장은 14일 동아일보와 e메일 인터뷰를 한 데 이어 귀국 이후인 16일 전화로 추가 답변을 전해 왔다.
그는 “이사회의 결정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학교의 의사결정기구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 총장은 혼자만의 생각을 구성원과 대화 없이 개혁이라며 밀어붙였고, 이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덧붙였다.
협의회는 서 총장의 활동에 많은 문제를 제기해 왔다. 생명화학과 김모 교수를 임용하면서 절차를 무시했다거나, 박모 교수의 특허를 가로채려 했다는 등 부도덕성을 지적한 내용이 많다. 학교 측은 이 문제들을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해 왔다.
경 회장은 ‘해명이 이뤄진 내용도 재차 공세를 계속해 왔다’는 질문에 “의혹이 있으니 총장의 해명을 요구한 것인데, 교협 앞으로는 공식적인 답변이 없었다”며 “외부에 해명을 해도 우리는 내막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소통에 응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됐던 특허 도용 사건도 거론했다. 학내 박모 교수가 ‘총장이 내 특허를 도용했다’고 주장하자 학교 측은 박 교수와 경 회장 등 4인을 공문서 위조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박 교수의 자작극으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고, 경 회장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인데 고소로 이어진 것이고, 우리는 경찰 수사 과정에 착오가 있다고 본다”며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교수협이 총장직선제를 얻어내 내부 교수를 총장에 앉히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테뉴어 심사 강화’ ‘영어 강의’ ‘등록금 차등부과’ 사사건건 마찰
■ 갈등 부른 ‘서남표 개혁’
서남표 총장은 2006년 7월 카이스트 총장에 취임한 뒤 학교는 물론이고 그 울타리를 넘어서는 수준의 개혁을 단행했다. 세계 최고의 대학과 과학기술을 향한 것이라는 그의 개혁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과 위주의 독단적 개혁”이라는 비판의 수위도 높아졌다.
대표적인 개혁은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강화였다. KAIST를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교수의 질을 높여야 한다며 2007년 8월 테뉴어 심사를 신청한 교수 38명 중 15명을 탈락시켰다. 이는 ‘교수 철밥통 깨기’라는 국민적 지지를 얻으며 대학 개혁의 불씨를 당겼지만 일부 교수들은 “자의적 평가가 많았다”며 반발했다.
서 총장은 사회적 책임감 확립을 위해 면제였던 등록금을 성적에 따라 차등 부과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부담에 반발했고 지난해 1∼4월 학생 4명이 자살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결국 폐지했다.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하며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 것도 학생과 교수 양측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서 총장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조성된 지 30년이 됐지만 원천기술이 하나도 없다”고 과학계 전체를 자극했다. 그는 “과학기술계에도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여론 악화를 자초했다. 정부의 연구소 통폐합 작업에 맞춰 2008년 4월 KAIST와 대전의 생명공학연구원의 통합을 추진해 ‘서남표 대 과학계’의 전선(戰線)이 넓어졌다. 연구기관 간 장벽을 없애기 위해 추진했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연구소들은 ”졸속 통폐합으로 연구 기능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온라인자동차 사업과 글로벌 프로젝트 등을 위해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에 건의해 예산을 따내곤 했다. 관료사회의 관행을 따르다가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아래 기사는 서남표 총장 때문에 KAIST가 오히려 쇠퇴했다는 느낌을 주는 악의적 혹은 순진한 글이다.
신입생 등록률이 84%인 것이 과연 서남표 총장 때문일까? 아니면 개혁에 반대한 교수협 때문일까? 서남표 총장이 떠나기 때문에 실망했기 때문은 아닐까?
또, 84%라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황과 KAIST의 위상에서 그렇게 낮은 숫자일까?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표방했던 서남표 총장체제의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이 위기에 내몰렸다. 카이스트의 ‘2013년 신입생등록률’이 84%로 개교 이래 가장 낮게 나타난 것이다.
카이스트는 추가모집, 면접일 조정 등 공격적인 전략을 세우고도 정원(850명)을 채우지 못해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다른 대학의 추가합격 발표 뒤 등록을 취소할 수도 있어 더 낮아질 가능성도 높다. 카이스트는 서울대와 포항공대 등 경쟁대학의 장학금 지급 확대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하지만 이런 현상은 예견된 일이었다.
원인(遠因), 근인(根因)은 물론 이공계 기피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올해 지원자 급감의 직접적인 원인은 ‘서남표식 개혁’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서 총장은 2006년 7월14일 카이스트 13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서 총장은 취임사에서 “세계 최고대학으로서의 카이스트를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임기 초 서 총장은 ‘대학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며 여러 혁신적인 제도를 학교에 들여와 국내·외적 인지도와 세계 랭킹이 올라갔다. 학교발전기금은 다른 대학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6년이 흐른 지금 ‘서남표식 개혁’은 곳곳에서 상처를 남기고 있다. 성적순 등록금납부제 등 정책을 시행한 뒤 학습환경이 악화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자살했다.
서 총장의 독단적 리더십이 낳은 불행이란 말이 나왔고 총장은 ‘개혁전도사’에서 ‘불통’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총학생회는 서 총장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총장실을 점거하겠다고까지 나왔다.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어느 기관이든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카이스트 사태는 개혁 추진이 ‘소신’이란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이뤄질 때 어떤 결과를 빚는지를 잘 보여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6년을 뒤로한 채 서 총장은 다음 달 23일 물러난다. 본인의 말처럼 서 총장은 떠나면 끝이다.
그러나 그 상처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구성원들 몫이다. ‘포스트(Post) 서남표’ 시대를 맞게 되는 카이스트는 서남표 개혁이 남긴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거기에 카이스트는 물론 한국 이공계의 한 장래가 놓여있다.
하지만 서남표 전 총장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신성장동력기획단장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내는 등 이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MB 압력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와 관련, 서남표 전 총장쪽에서도 서 전 총장의 퇴진 압력 배경에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특정학맥'을 가진 세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한 측근 인사는 "서남표 죽이기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청와대 등에 포진한 경기고-서울대(KS)라인의 기득권 지키기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서 전 총장도 자서전에서 "오명 이사장은 나의 연임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교과부의 또다른 카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내가 연임에 도전하기로 결정하고 난 직후인 (2010년) 6월부터 급격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그 즈음 교과부에서 '서 총장 연임 불가' 방침을 확고하게 정했다는 말이 여러 채널을 통해 들려왔다. 2010년 6월 26일자 <동아일보> 사설에는 '지난날 외국인 총장을 몰아낸 일부 인사가 이번에는 특정학교 학맥의 총리, 교과부 장관까지 동원해 서 총장을 축축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271쪽)
서남표 전 총장은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통제 불가능한 인사였다는 것이 맞다"라며 "자꾸 '라인을 거스르고' '정부관료들에게 굽신거리지도 않을 뿐더러' '최상위층의 정책결정권자들을 직접 만나 담판 짓는' 행동들이, 주무부처 내 실세 관료들의 심기를 불편케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실세 관료들'이 느낀 그 불편함의 배경으로 카이스트 이사회 구조 개선을 들었다.
"부임 초만 하더라도 이사회가 말만 이사회였지 정부 의견에 대한 거수기 노릇만 하는 기구였을 뿐이다. 그들은 실질적인 학교 발전에 큰 관심이 없었다."(271쪽)
"그들에게서 카이스트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욕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명예직으로 앉아 있다는 인상만 받았을 뿐이다. 일부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었지만, 정부의 입장에 순응하는 경우가 주류라서 정부 방침이 이사회의 결정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305쪽)
"그런 식의 이사회 운영과 이사들의 태도에 실망한 나는 진정으로 학교를 위할 만한 인물들, 가령 자신의 기부가 제대로 성과를 내는지에 관심을 가진 거액의 기부자들이나 기관 운영에 전문성을 가진 분들, 또는 세계적 연구대학의 흐름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이사로 영입했다. 그분들의 특징은 정부의 입김이나 여타의 외압이 먹히지 않을 만큼 뚜렷한 주관과 경영철학의 소유자들이라는 점이다. 과거처럼 미리 정책방향이나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하달하는 식의 구조가 흔들릴 지경이었으니, 정부로서도 부담을 느낄 만했다."(272쪽)
서남표 전 총장은 "정관에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아서 제대로 이사장 구실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권력 앞에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기 때문에 못할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자살학생의 가족 중 그 누구도 나와 학교를 탓하는 사람 없어"
또한 서남표 전 총장은 자서전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사태에도 말문을 열었다. 카이스트에서는 지난 2011년과 2012년 총 5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연달아 자살했다. 이는 카이스트 내부에 머물던 '서남표 퇴진론'이 학교 밖으로까지 확대된 결정적 계기였다.
서 전 총장은 "내가 일평생 겪은 일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면서도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어떤 소명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합리적 이성의 작동에 의한 분별심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아주 광포한 여론몰이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정말로 그들은 어느 꽃다운 죽음들에 너무 슬펐던 것일까? 그런 나머지 '서남표'라는 제물로 희생제의를 올리려 한 것인가?"(241쪽)
당시 언론 등에서는 자살사태의 원인으로 100% 영어 강의나 차등 등록금제(언론에서는 '징벌적 등록금제'로 표현했다) 등 '서남표식 대학개혁정책'을 지목했다. 하지만 서 전 총장은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카이스트라는 기관의 장으로서 내가 시행한 정책의 결함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면 나는 그 즉시 옷을 벗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이른 학생의 가족 중 그 누구도 나와 학교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로 100% 영어 강의나 차등 등록금제가 문제였다면 유가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나 학교 관계자를 추궁했을 것이다."(241쪽)
서 전 총장은 "전문가들의 조언으로는 그 당시 유족에게서 들은 사건의 실상을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거라고 한다"라며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학생 본인과 유족의 입장을 생각할 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서 전 총장의 한 측근인사는 "자살한 4명의 학생 중 한 명은 유서를 남겼는데 총장의 정책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며 "하지만 부모가 원치 않아서 유서를 공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남표식 개혁정책 때문에 학생들이 자살했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득권 수호의 의지에서 나온 '불편'의 표현은 아닌지"
특히 서남표 전 총장은 카이스트 교수사회에도 쓴소리를 내놓았다. 그는 교수들이 영년직 심사 강화와 학과장 중심제도 등에 반발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영년직 심사 강화와 학과장 중심제도 등을 통해 카이스트 교수사회의 철밥통 지배구조를 바꾸려고 하자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며 이후에는 결국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직도 '철밥통' 문화가 가시지 않은 교수사회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눌러앉아 학문보다는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심각한 폐해를 끼칠 여지가 많다. 부정적인 집단이 수십 년간 학내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우리를 아찔하게 만든다."(294-295쪽)
"나를 힐난했다는 이들에게 나는 이 자리에서 되묻고 싶다. 당신의 외침이 개선과 진보를 위한 '불평'인지 아니면 타성과 기득권 수호의 의지에서 나온 '불편'의 표현인지를."(207쪽)
서 전 총장은 "'스납 조닝'(Snob Zoning)은 외부와의 연관을 끊고 '자기들끼리만' 잘 살겠다는 행동양태를 가리킨다"며 "한국사회에서 이런 '구역 나눔'의 세태가 최대한 빨리 근절되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서 전 총장은 "과학고 졸업장이 과학을 선망하는 아이들의 목표가 아니라 '성적지상주의 사회의 존재증명서'로 변질됐다"며 "우리 아이들이 자부심과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구분할 줄 아는 인성을 갖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앞으로 과학고나 영재학교를 더 많이 만든다는데, 이 성공지상주의 사회에서 점점 더 특수계급만 양산해내지 않을까 싶은 염려를 감출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 전 총장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과학기술 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지식을 융합해서 시대의 흐름에 앞서 나가길 바란다"라며 "자기 앞에 놓인 텍스트에만 매몰되지 말고 문명의 흐름, 문화의 변화, 산업의 발전과 같은 콘텍스트를 접목해서 남보다 빨리 변화를 읽고 선도적 시스템을 발명해내는 인재가 됐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 주옥같은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