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이야기
2011. 9. 14. 08:35ㆍ전략 & 컨설팅/전략
88만원세대에게 주는 이야기라는데...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Myth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내용들이 있어서 퍼왔다.
노력은 성공 확률을 높여 주지만, 노력 없이 성공하는 사람도 많고, 노력해도 성공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게 인생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관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Half full과 half empty?
Half full의 자세로 살아왔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밑의 양준혁 말처럼... 만족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되는 것, 그것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머니투데이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1091316022153210&type=1&STOCK_TOP
“제 20대요? 어려움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죠.”
양신(梁神) 양준혁(42)도 처음부터 신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하려 했으나 “대학 가서 더 배우고 오라”는 핀잔만 들었다. 대학(영남대)을 졸업하고 다시 삼성을 찾았지만 “자리가 없다”고 해서 상무로 발길을 돌렸다. “야구만 생각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온 지 그때가 딱 15년째였는데, 이대로 무너지는가 했죠. 단무지 팔고 파출부 나가던 엄마 얼굴이 어른거리더라구요.” 양준혁의 20대는 지금 20대와 많이 닮은 듯했다. 수십 수백 번 원서를 써도 취업하기 힘들어 수없이 ‘이대로 무너지는가’를 되뇌어야 하는 지금 20대와 말이다.
양준혁은 이로부터 2년 뒤 꿈에 그리던 삼성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신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난 야구만 했다. 지식은 없다. 하지만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는 양준혁을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야구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야구를 통해 배웠다는 인생타법이 눈물 젖은 원서를 쓰고 있는 88만원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였다.
“내야안타 아니었으면 나도 2할9푼대 타자”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자 양준혁은 대뜸 “(88만원 세대와 88억원 세대는) 한 끗 차이”라고 말했다. 한 끗 차이라니?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1%의 가능성을 믿고 죽기 살기로 뛰다 보면 기회가 생긴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양준혁은 야구 기자들 사이에서 땅볼치고 1루까지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로 유명했다.
“제 통산타율이 3할1푼6리인데 내야안타가 159개입니다. 아웃 될 것 같아도 1루까지 죽고 살기로 뛰는 거죠. 열심히 뛰면 상대 내야수도 다급해지기 때문에 에러가 나옵니다. 포수가 송구실책을 하면서 결승타가 되기도 합니다. 그게 없었으면 저도 2할9푼 타자에 불과했을 겁니다. 자세는 한 끗 차이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죠. 단 1%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달려야 합니다.”
99%의 불가능만 보는 사람과 1%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결과가 엄청나다는 설명이다. 그는 “결과가 어차피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고 대충 넘어가면 기회를 만들 수 없다”며 “하나마나 한 짓이라 치부하는 것이 가장 나쁜 자세”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세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든다는 그의 메시지는 기자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중략) ...........
“기뻐하는 건 딱 30분이면 족합니다”
하지만 양준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천리를 다 왔다고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친구들일수록 보상심리가 있어서 목표를 달성하면 딱 멈춰버립니다. 그것보다 더 큰 산이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멈추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승엽이처럼 계속 더 높은 목표를 세워가면서 해나가야 되는데 말이죠. 저도 사람인데 왜 안 그랬겠습니까. 그래도 멈추고 싶을 때마다 마음으로 트레이닝 했습니다. ‘이러다간 곧 떨어진다’고 말이죠.”
양준혁은 2000안타가 최고 목표였는데 그걸 치고 나서 ‘딱 한잔’만 먹고 다음날 안타 하나 더 때리고 싶어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2002년 첫 우승을 했을 때도 하루 딱 놀고 다시 운동에 들어갔다고 했다. “기뻐하는 건 딱 30분, 1시간이면 떡을 칩니다. 더 넘어가면 안됩니다. 거기서 끝내야 합니다. 젖어버리면 끝입니다. 환희는 빨리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거죠.” 참 야박한 얘기이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래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중략) ...
“가장 자랑스러운 기록은 최다사사구 1280개”
“야구가 왜 좋은 운동인지 아십니까. 팀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번트치고 희생도 해야 합니다. 팀플레이가 안되면 아무리 능력 뛰어나도 소용없습니다. 야구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요즘 청년들이 자기밖에 너무 모른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청년들의 공동체의식 결핍을 자신과 이승엽과의 관계에 빗대어 지적했다.
“승엽이가 크기 전엔 제가 최고연봉인 1억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승엽이가 아시아 기록을 깨면서 3억원을 받았죠. 그러니깐 저도 2억5천만원으로 오르더군요. 승엽이가 더 받을수록 저도 더 받게 되는 겁니다. 그게 팀플레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기록이 뭔지 아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그에게 ‘최다’자가 붙은 기록만 최다경기(2135경기), 최다홈련(351개), 최다안타(2318개), 최다타점(1389개), 최다득점(1299개), 최다타수(7332타수), 최다루타(3879루타), 최다사사구(1280개) 등 8개. 그는 이런 최고 프로필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언급되는 최다 사사구(四死球)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볼 넷으로 나가고, 또 투수가 던진 볼에 맞아서 나간 횟수가 가장 많았던 것. “뒤의 타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했습니다. 특히 승엽이에게 말이죠. 그래서 만연 2인자라는 소리를 들어왔는지 모르죠. 그런데 막상 은퇴경기를 하고 나서보니 제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돼있더라고요.”
(중략) ...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Myth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내용들이 있어서 퍼왔다.
노력은 성공 확률을 높여 주지만, 노력 없이 성공하는 사람도 많고, 노력해도 성공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게 인생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관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Half full과 half empty?
Half full의 자세로 살아왔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밑의 양준혁 말처럼... 만족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되는 것, 그것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머니투데이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1091316022153210&type=1&STOCK_TOP
“제 20대요? 어려움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죠.”
양신(梁神) 양준혁(42)도 처음부터 신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하려 했으나 “대학 가서 더 배우고 오라”는 핀잔만 들었다. 대학(영남대)을 졸업하고 다시 삼성을 찾았지만 “자리가 없다”고 해서 상무로 발길을 돌렸다. “야구만 생각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온 지 그때가 딱 15년째였는데, 이대로 무너지는가 했죠. 단무지 팔고 파출부 나가던 엄마 얼굴이 어른거리더라구요.” 양준혁의 20대는 지금 20대와 많이 닮은 듯했다. 수십 수백 번 원서를 써도 취업하기 힘들어 수없이 ‘이대로 무너지는가’를 되뇌어야 하는 지금 20대와 말이다.
양준혁은 이로부터 2년 뒤 꿈에 그리던 삼성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신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난 야구만 했다. 지식은 없다. 하지만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는 양준혁을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야구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야구를 통해 배웠다는 인생타법이 눈물 젖은 원서를 쓰고 있는 88만원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였다.
“내야안타 아니었으면 나도 2할9푼대 타자”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자 양준혁은 대뜸 “(88만원 세대와 88억원 세대는) 한 끗 차이”라고 말했다. 한 끗 차이라니?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1%의 가능성을 믿고 죽기 살기로 뛰다 보면 기회가 생긴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양준혁은 야구 기자들 사이에서 땅볼치고 1루까지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로 유명했다.
“제 통산타율이 3할1푼6리인데 내야안타가 159개입니다. 아웃 될 것 같아도 1루까지 죽고 살기로 뛰는 거죠. 열심히 뛰면 상대 내야수도 다급해지기 때문에 에러가 나옵니다. 포수가 송구실책을 하면서 결승타가 되기도 합니다. 그게 없었으면 저도 2할9푼 타자에 불과했을 겁니다. 자세는 한 끗 차이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죠. 단 1%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달려야 합니다.”
99%의 불가능만 보는 사람과 1%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결과가 엄청나다는 설명이다. 그는 “결과가 어차피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고 대충 넘어가면 기회를 만들 수 없다”며 “하나마나 한 짓이라 치부하는 것이 가장 나쁜 자세”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세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든다는 그의 메시지는 기자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중략) ...........
“기뻐하는 건 딱 30분이면 족합니다”
하지만 양준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천리를 다 왔다고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친구들일수록 보상심리가 있어서 목표를 달성하면 딱 멈춰버립니다. 그것보다 더 큰 산이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멈추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승엽이처럼 계속 더 높은 목표를 세워가면서 해나가야 되는데 말이죠. 저도 사람인데 왜 안 그랬겠습니까. 그래도 멈추고 싶을 때마다 마음으로 트레이닝 했습니다. ‘이러다간 곧 떨어진다’고 말이죠.”
양준혁은 2000안타가 최고 목표였는데 그걸 치고 나서 ‘딱 한잔’만 먹고 다음날 안타 하나 더 때리고 싶어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2002년 첫 우승을 했을 때도 하루 딱 놀고 다시 운동에 들어갔다고 했다. “기뻐하는 건 딱 30분, 1시간이면 떡을 칩니다. 더 넘어가면 안됩니다. 거기서 끝내야 합니다. 젖어버리면 끝입니다. 환희는 빨리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거죠.” 참 야박한 얘기이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래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중략) ...
“야구가 왜 좋은 운동인지 아십니까. 팀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번트치고 희생도 해야 합니다. 팀플레이가 안되면 아무리 능력 뛰어나도 소용없습니다. 야구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요즘 청년들이 자기밖에 너무 모른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청년들의 공동체의식 결핍을 자신과 이승엽과의 관계에 빗대어 지적했다.
“승엽이가 크기 전엔 제가 최고연봉인 1억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승엽이가 아시아 기록을 깨면서 3억원을 받았죠. 그러니깐 저도 2억5천만원으로 오르더군요. 승엽이가 더 받을수록 저도 더 받게 되는 겁니다. 그게 팀플레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기록이 뭔지 아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그에게 ‘최다’자가 붙은 기록만 최다경기(2135경기), 최다홈련(351개), 최다안타(2318개), 최다타점(1389개), 최다득점(1299개), 최다타수(7332타수), 최다루타(3879루타), 최다사사구(1280개) 등 8개. 그는 이런 최고 프로필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언급되는 최다 사사구(四死球)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볼 넷으로 나가고, 또 투수가 던진 볼에 맞아서 나간 횟수가 가장 많았던 것. “뒤의 타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했습니다. 특히 승엽이에게 말이죠. 그래서 만연 2인자라는 소리를 들어왔는지 모르죠. 그런데 막상 은퇴경기를 하고 나서보니 제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 돼있더라고요.”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