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트앤영 기소 - 리포 105

2010. 12. 23. 10:12전략 & 컨설팅/전략

회계법인들이 자본주의의 첨병인 것은 사실이겠지만, 엔론 사태 이후에 또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불가피 하다는 방증(傍證).

사람이 만드는 사회라는게... 완벽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규칙도 마찬가지.

최대한 어느 선을 지키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미국 2위 회계법인 언스트앤영 기소 당해
-리먼 회계 부정에 관여한 혐의..금융위기 이후 회계법인 첫 도마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사라진 지 2년이 지난 가운데, 회계법인으로 화살이 향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 검찰이 리먼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미국 2위 회계법인인 언스트앤영(E&Y)을 기소한 것이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체로 신용 평가사, 헤지 펀드 등은 빈번하게 거론됐으나 회계법인이 도마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신평사와 마찬가지로 회계법인과 고객 간의 관계도 밀월이 불가피하다. 이번 기소를 계기로 다른 감독국들도 회계법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금융위기에 비판 모면한 회계법인 도마 오르나

뉴욕주 검찰은 21일(현지시각) E&Y을 리먼브러더스의 회계 부정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는 지난 10년간 회계법인을 상대로 취해진 가장 전면적인 기소"라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스(NYT)는 "리먼이 무너진 지 2년만에 시행된 첫 법률적 조치"라고 전했다.

E&Y는 지난 2001년부터 2008년 9월 리먼 파산 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리먼의 외부 회계 감사를 맡아왔다. 검찰은 E&Y가 리먼이 회계 분기를 마치기 전에 장부에서 부채를 떨궈내는 방식으로 회계를 조작한 것을 용인했다고 보고 있다. 32쪽의 기소장은 "이같은 거래로 리먼의 대차대조표에서 수백억달러의 증권이 은근슬쩍 제거됐고, 이는 재무 상황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줬다"고 밝혔다.

E&Y는 지난 2001~2008년까지 리먼의 회계 감사를 맡은 이후 약1억5000만달러를 수수료로 받았다. 검찰은 E&Y가 이 수수료 반환해야 할 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손실에 대해서도 배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E&Y는 혐의를 부정하면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회계법인 기소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혐의 내용에 대해서는 "리먼의 재무제표는 리먼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NYT에 따르면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 검찰총장은 총장으로서의 임기를 열흘 앞둔 상태에서 이번 결정을 내렸다. 후임자는 '리포 105'로 불리는 리먼의 회계 조작에 대해 파헤져야 한다. 아울러 이번 기소는 다른 감독국들이 회계법인에 대한 제재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리포 105를 둘러싼 의혹

이번 기소의 중심에는 월가 은행들의 회계 기법 중 하나인 '리포 105'가 자리잡고 있다. 뉴욕주 검찰은 리먼이 '리포 105'라는 수법으로 재무제표에서 부채를 줄였고, 회계법인인 E&Y가 이를 묵인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환매조건부 채권인 리포 매매를 통해 100달러를 빌릴 경우 105달러의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식의 '리포 105'는 월가 은행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변형된 기업 재무 관리 수단 중 하나다. 향후 되사겠다는 조건으로 자산을 팔아 현금 항목을 채운 뒤 수일 내에 다시 자산을 되사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 옮기기는 '자금 조달'이 아닌 '매각'으로 취급됐다.

리먼은 이 거래를 재무제표에서 '매각'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견해가 필요했는데, 미국에서 의견을 구하지 못하자 영국으로 향했다. 결국 영국 법률회사인 링클레이터스로부터 법적 견해를 구했다. 이 법률회사는 "리포 105거래를 매각으로 규정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법률 회사의 견해가 영국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거래 역시 영국에서 행해져야했고, 리먼은 해당 증권을 들고 영국 은행으로 향했다.

이같은 수법을 통해 리먼의 대차대조표에서 최대 500억달러의 자산이 증발, 회사의 채무가 마치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리먼은 망하기 직전까지 이같은 수법을 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붕괴 직전 해에 '리포 105' 를 대거활용했다. 팔기 어려운 수십억달러의 악성 모기지와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소장은 이 거래가 별도의 사업적인 목적으로 행해진 게 아니고, 오로지 재무제표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속임수'라고 판단했다.

◆ 엔론 사태와 닮은 꼴

리먼의 역대 최고재무책임자(CFO) 2명은 E&Y 출신이었다. 지난 2004년~2007년에 리먼의 CFO를 지낸 크리스토퍼 오미라는 리먼이 E&Y 고객이었던 1994년에 리먼에 합류했다. 그의 전임자인 데이비드 골드파브 CFO 역시 E&Y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회계법인과 고객 간의 관계가 얼마나 밀착돼있는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리먼은 E&Y의 주요 고객 중 하나였다. 오딧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리먼 붕괴 직전 해인 2007년에 리먼은 E&Y의 미국 8대 고객이었다. 리먼은 지난 7년간 언스트앤영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는동안 매년 15대 고객에 포함됐다.

회계법인과 기업관의 유착 관계는 지난 2002년의 엔론 사태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미국 에너지업체인 엔론이 회계부정으로 파산하면서 이를 묵인했던 회계법인 아서앤더슨도 결국 몰락했다. 당시 엔론의 최고 회계 책임자를 포함한 임원진들은 아서앤더슨 출신이었다.

엔론 사태 이후 기업의 회계기준을 강화한 사베인 옥슬리 법이 제정됐지만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기된다. 애널리스트 어카운팅 옵저버의 창간자인 잭 시에지엘스키는 "사베인 옥슬리법 도입 이후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계법인과 기업들이 상호 이익을 취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리먼이 망했기 때문에 E&Y의 회계 부정 혐의가 부각되는 것일 뿐, 다른 '대마불사' 금융회사들의 회계법인 역시 유사한 회계 기법을 용인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KPMG에서 회계감사를 받는 씨티그룹과 도이치뱅크, PwC로부터 회계감사를 받는 뱅크오브아메리카 모두 리포 105 스타일의 거래를 하고 있다"면서 "다만 규모가 리먼보다 작았고, 리먼처럼 망하지 않았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칼럼에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