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5. 11:34ㆍPeople
나도 인정한다.
그리고, 1900년대 초반의 오스트리아 빈... 나도 그곳에 있었더라면.
1909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난 드러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한때 신문 기자, 은행의 분석가, 철학 및 정치학 교수로 일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드러커는 39년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The End of Economic Man)>을 시작으로 방대한 저술 작업을 이어나갔다. 50년부터 71년까지 뉴욕대학 경영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71년부터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캘리포니아에 있는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드러커의 왕성한 연구와 저술 활동은 현대 경영학의 기초가 되었고, 경영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의 목적은 이익이 아닌 사회에 있다
오늘날 기업은 사회의 어떤 기관보다 많은 일을 하고,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 현대 기업의 모습은 20세기 초에 정립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대기업은 기업 내부에 있는 구성원조차도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마저 생겼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답변을 듣게 된다. 하지만 드러커는 이 대답이 틀렸을 뿐만 아니라 기업 조직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도 않다고 역설했다. 당연히 이익은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하지만 이익이 기업 경영의 목적은 아니다. 단지 제약 조건일 뿐이다.
드러커는 기업의 목적이 기업 외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은 사회의 한 기관이므로 기업의 목적도 사회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 목적에 관한 타당한 정의는 오직 단 하나,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시장을 창조하는 것은 신이나 자연의 힘이 아니라 바로 기업이다. 기업이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들 가운데 어떤 것은 아직 소비자들에 의해 인식조차 되지 않은 것도 있다. 예컨대 복사기나 컴퓨터가 실제로 등장하기 전에 소비자들은 아무도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기업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이다. 왜냐하면 제품과 서비스에 관해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는 고객만이 기업이 가지고 있는 단순 자원들을 가치 있는 재화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기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활동이 정리된다. 드러커는 마케팅(marketing)과 혁신(innovation)을 핵심 활동으로 제안했다. 마케팅이란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는 것이며, 혁신은 고객들이 깨닫지 못하는 욕구를 찾아내는 활동이다. 따라서 마케팅은 판매와 완벽히 다른 개념이다. 마케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고객을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제품과 서비스를 적절하게 제공하여 그것들이 스스로 팔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진정한 마케팅은 ‘우리가 팔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대신 ‘고객이 구입하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혁신은 고객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활동으로 정의한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만족을 창출하는 것이다. 혁신의 결과는 새롭고 남다른 제품, 새로운 용도 또는 새로운 욕구의 발견이다. 가장 성공적인 혁신은 단순히 기존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 남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객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을 혁신으로 좁게 규정하지는 않는다. 드러커는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는 활동도 혁신이라고 주장한다. 에스키모인에게 식품 냉동 방지용으로 냉장고를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 역시 혁신인 셈이다. 결국 기업은 마케팅과 혁신을 통해 고객과 시장을 창조하는 존재이다.
우리의 고객은 누구이고 무엇을 구매하는가
기업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든 사람은 막연하게나마 사업에 관한 정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 구성원들이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다르거나 때로는 상호 모순된 사업 정의에 근거해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그들은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드러커는 기업이 공통의 목적과 사명을 공유하면서 구성원들의 노력과 행동을 통합하려면,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어떤 기업의 사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얼핏 분명해 보인다. 석유 회사는 석유를 만들고, 철도 회사는 화물과 승객을 수송하고, 은행은 돈을 대출하는 것을 각자의 사업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는 사업 정의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컨대 코카콜라는 콜라 시장에서 5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자랑하지만, 전체 음료 시장에서는 5%가 되지 않는 시장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질레트 역시 면도기 시장에서는 60%가 넘는 시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남성용 그루밍(치장, grooming) 시장에서는 20% 정도밖에 안 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코카콜라나 질레트 모두 자신의 사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과 사명의 출발점을 고객에서 찾았듯이, 드러커는 사업의 정의 또한 고객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상호나 설립 취지 혹은 정관 같은 것으로는 사업 내용을 알 수 없다. 사업의 내용은 고객이 그 회사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구입함으로써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무엇인지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기업의 고객과 시장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업에 대한 정의에서 필수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다.
사업 정의를 위한 또 다른 핵심 질문은 ‘우리의 고객은 무엇을 구입하는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은 위기에 처한 사업을 살리기도 했다. 드러커는 1930년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캐딜락 사업부를 예로 들었다.
당시 캐딜락 신형 모델을 7000달러라는 고가를 지불하고 산 고객은 과연 무엇을 구입한 것인가? 운송 수단인가, 아니면 높은 사회적 품위인가? 캐딜락 사업부의 책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했다. ‘캐딜락은 다이아몬드나 밍크코트와 경쟁한다. 캐딜락의 고객은 운송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구입한 것이다.’ 이 대답이 대공황의 여파로 파산 위기에 놓였던 캐딜락 사업부를 부활시켰다. 덕분에 캐딜락 사업은 불황을 극복하고 제너럴모터스의 주요 사업이 될 수 있었다.
드러커는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 할 중요한 시기는 오히려 회사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때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성공적인 기업이라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급변하는 환경변화 속에서 사업의 정의는 급속도로 진부해지기 때문이다.
GM의 캐딜락 사업(왼쪽)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찾아내 성공한 데 비해 IBM은 컴퓨터 산업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SW사업 부문을 MS에 넘기며 궁지에 몰렸다. 2001년 탄생 20주년 행사에 참여한 빌 게이츠 MS회장과 앤드루 그로브 당시 인텔 회장.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의심하라
특정 사업에 대한 정의는 50년은 고사하고 30년 정도라도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드물다. 드러커는 대략 10년 정도 그 대답이 유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경영자는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할 사업은 무엇인가?’, ‘우리 사업의 성격과 사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시되는 환경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추가로 해야 할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일류 기업이었던 회사가 갑작스러운 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기업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위기의 주된 원인은 일을 잘못 수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올바른 일을 했지만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드러커는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기초가 되었던 기본 가정들이 더 이상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초우량 기업인 IBM의 사례를 살펴보자. 컴퓨터가 도입된 이래 IBM은 컴퓨터의 미래가 중앙 스테이션, 즉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대형 컴퓨터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대형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정보 시스템이 막 실현될 즈음, 신생 기업인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PC)를 최초로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컴퓨터 제조업자들은 PC가 메모리, 데이터베이스 용량, 속도, 계산 능력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처럼 잘못 태어난 애물단지가 시장에 나오자, 사람들은 PC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형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컨트롤 데이터(Control Data), 유럽의 지멘스(Siemens), 일본의 후지쓰(Fujitsu) 등은 실제 PC사업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그러나 IBM은 달랐다. 즉시 두 개의 경쟁 팀을 만들어 좀 더 간편한 PC를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수년 후 IBM은 세계 최대의 PC제조업체가 되었다. IBM에서는 대기업에 흔히 따라붙는 관료주의 병폐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IBM은 이러한 전례 없는 민첩성과 겸허한 자세를 가졌는데도 대형 컴퓨터와 PC사업 모두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도대체 IBM에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드러커는 IBM이 직면한 현실이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관행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대형 컴퓨터와 PC는 완벽히 다른 개념이었다. 정보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달랐다. 대형 컴퓨터에서 정보는 기억 용량이지만, PC에서 정보는 소프트웨어를 의미했다. 대형 컴퓨터 사업에 익숙한 IBM은 PC사업의 본질을 하드웨어 조립 사업이라고 인식했지만, 실제 고객이 중시했던 것은 컴퓨터 본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였다. IBM이 PC사업에서 소프트웨어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버린 사건은 정말 아이러니다. 결국 IBM이 겪은 위기의 근본원인은 컴퓨터 산업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 중심이라는 잘못된 사업 가정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경영자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드러커는 자기 사업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끊임없이 점검하라고 조언한다. 기업 내부를 들여다보고 잘못된 가정을 폐기해야 한다. 체계적이고 의도적으로 사업의 고정관념들을 폐기하지 않으면 기업은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에 치여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경영자는 기업의 특유한 기관
드러커는 모든 기업이 3년마다 자사의 모든 제품, 서비스, 그리고 유통망에 대해 ‘만약 우리가 이러한 제품, 서비스, 유통망을 채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이러한 제품이나 서비스, 유통망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러커의 주장처럼 많은 기업이 성장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주된 원인은 리더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생각이 기업 환경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드러커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노동’으로 대립하였던 전통적인 경제학적 관점을 ‘경영’과 ‘노동’이라는 경영학적 관점으로 대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방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기업 경영의 원형을 지속적으로 탐구하였다. 그에게 경영자는 기업의 특유한 기관(organ)이었다. 기업은 오직 경영자가 행동할 때에만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다. 경영자가 없는 기업은 목적을 달성하는 실체가 아니다. 기업이 법률적 구조에 관계없이 사회적 기관으로서 존재하고,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영자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드러커는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전통적인 노동자의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지식근로자란 정보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이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노동자를 가리킨다. 테일러가 노동의 과학적 관리법을 제시한 이래로 인적자원관리의 핵심은 육체노동자의 생산성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드러커가 주창한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이 인적자원관리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인적자원관리의 중심이 육체노동자의 생산성에서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으로 이동함에 따라, 조직의 구성원들과 그들이 수행하는 직무에 대해 전혀 다른 새로운 가정들이 요구되고 있다. 결국 인적자원관리란 사람을 관리(control)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이끄는(lead) 것이다. 그리고 경영자가 수행해야 할 인적자원관리의 목표는 각 개인이 가진 특유의 강점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경영의 현자에게 더 이상 조언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기사: 이동현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dhlee67@catholic.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