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의 교훈

2010. 5. 10. 22:53전략 & 컨설팅/전략

떨어지는 것은 최선을 다하다가 불가항력적으로 생명선에 의지해서 공중에 매달리는 상태이다.
실패하는 것은... 스스로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려서 공중에 매달리는 것이다.
둘이 어떻게 다른지, 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실패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이고... 패배감이 심하다.

확률과 결과를 구별하라.... 매우 좋은 말이다.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그게 목숨과 직결된다면 그것은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즉, 결과의 심각성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이다. 무모한 짓은 하지 말되, 결과에 대해 통제 가능하다면 과감히 시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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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이 넘게 암벽등반을 해 왔다. 나의 삶과 진로에 대한 인식은 등반가로서 성숙해온 과정과 떼어놓을 수 없다. 10대 초반 나의 의붓아버지는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나를 암벽등반 교육코스에 등록시켰다(그 때 난 차라리 공부를 하겠다고 불평했었다). 그러나 암벽등반 교육 첫날이 저물 무렵, 나는 내 삶의 불타오르는 열정 중 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자란 콜로라도 볼더(Boulder)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암벽등반 센터가 있었고,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세계 일류 등반가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스탠포드대학을 방문한 날, 나는 부모님께 내가 선택한 대학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벌였다. "그곳에는 공강시간에 등반하기에 정말 멋진 샌드스톤(건축용 사암) 빌딩이 있어요!"

신입생이던 어느날 철학부 건물의 새로운 코스를 등반하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발을 끌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스터 콜린스! 등반이 과연 존재의 딜레마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일까?" 철학부 명예교수 존 고힌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등반을 'Kant Be Done'이라 이름지었다.

암벽등반은 내게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교실이었다. 그 교실에서 받은 수업은 사업, 경영, 리더십, 과학 연구 등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 가능한 것이었다. 암벽등반은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지 않는다(죽음은 대개 수업의 종료를 뜻한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도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등반 이외의 삶과 일에 대한 중요한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실패가 아닌, 떨어짐을 위해 등반하라

정상에 오르지 않고 성공하는 법: 나는 친구 매트와 함께 굽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바위 한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 바위는 은빛 화강암 절벽의 중앙을 가르는, 얇고 손가락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틈과 함께 부드럽고 가냘프게 걸려있는 바위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등반 코스를 '크리스탈 볼(Crystal Ball)'이라 부르는 이유야." 매트가 15m 위의 야구공 만한 규암 바위턱(handhold: 절벽 등의 붙잡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로프를 동여매고 'on-sight' 등반을 시작했다('on-sight' 등반은 암벽에 대한 사전 정보나 보조 도구 없이, 선두에서 암벽을 오르는 것을 말한다. 단 떨어지지 않고 첫번째 시도에 성공해야 한다. 'on-sight'는 가장 가치 있는 등반 방법 가운데 하나이며 기회는 한 루트에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on-sight' 등반의 기회는 단 한번뿐이다. 실수를 하면 영원히 기회를 잃는다.

크리스탈 볼을 3m 앞두고, 갑자기 발이 매끄러운 돌에 스치듯 미끄러졌다. 급히 엄지손가락을 작은 틈에 걸어 의지하고 속으로 읊조렸다. "손가락에 조금만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면..." 'on-sight' 등반은 나를 매우 긴장하게 했다.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매번 바위턱을 최대한 강하게 붙잡았고, 있는 힘껏 조였다.

"짐! 심호흡을 해! 긴장 풀고!!" 매트의 목소리가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틈에 단단히 고정시킨 채로 잠시 동안 평정을 찾았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마음 속은 걱정스런 목소리들로 가득찼다. "내가 틀린 길을 택한 거라면 난 돌아갈 방법이 없다. 내가 옳은 길을 선택했다 해도 크리스탈 볼까지 올라갈 만한 힘이 남아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크리스탈 볼은 로프를 걸어 우리를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접점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여기서 떨어지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떨어질까…"

째깍째깍. 내가 주저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좋아, 매트! 출발한다!"

오른손으로 옆을 잡고, 왼발을 모서리에 붙였다. "오, 이런!!" 잘못된 선택이었다. 왼손으로 모서리를 잡았어야 했다. 나는 몸을 왼쪽으로 굴려 잡을 수 있는 뭔가를 더듬어 찾았다. 왼손으로 무언가를 잡아 버텨야 오른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그래야만 왼발을 모서리에 붙일 수 있었다. 성공의 가능성은 채 20%도 안되었다. 이 상태에서 움직인다면 9m 밑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로프를 카라비너(D자형 고리)에 엮어 안전볼트에 걸어야만 했다. 'on-sight'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 상태로 무작정 올라간다면, 더 위험한 추락만이 기다릴 뿐이다.

"그만둬야겠어!" 매트에게 말했다.

"안돼!" 그는 큰소리로 말렸다. "크리스탈 볼까지 세번만 더 움직이면 돼. 넌 할 수 있어!"

"정말 못하겠다니까!" 나도 소리 질렀다. 그리고는 손을 놓고 로프에 의지해 떨어졌다. 한 10분간을 로프에 매달려 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난 후 몸을 흔들어 암벽으로 붙었다. 바위턱을 잡고 올라가 결국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명백히 'on-sight' 등반에는 실패했다. 훗날 나는 같은 코스를 단 한번의 실수 없이 등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패했다. 암벽을 오르는데는 성공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패배했다. 책임을 져야하는 순간에 직면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on-sight' 등반을 맡은 상황에서 나는 포기했다.

나는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실패했다. 떨어짐(fallure)과 실패(failure)[fallure는 일종의 워드플레이(wordplay)임. 등반가들이 코스를 완주해내지는 못했지만 움츠리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을 의미한다]. 둘의 차이는 미묘한 듯 하지만 엄청나다. 떨어짐은 코스를 완주하지 못했더라도 최선을 다했음을 의미한다. 떨어짐은 추락을 의미하고, 실패는 포기를 의미한다. 떨어짐은 성공 가능성이 20%, 10% 심지어 5%라 할지라도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최선을 다했으므로 아쉬움이란 없다. 결코 정신적으로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 떨어짐은 공포, 고통, 피로, 불확실성에도 굴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외부의 관찰자가 보기에 실패와 떨어짐은 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느끼는 떨어짐은 실패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떨어짐을 선택했을 때 참된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 크리스탈 볼에 다다를 수 있는 확률은 틀림없이 20% 미만이었지만, 난 포기했기 때문에 그 확률을 검증해 볼 수 없었다. 아마 나에게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힘이 남아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었고, 한걸음 한걸음 옮겨가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 놀랄지도 몰랐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불안해 보이던 바위턱이 꽤 견실한 것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문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다음 바위턱이 어떻게 느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바위턱의 선택에 관한 것이건, 움직임에 관한 것이건, 로프를 거는 문제이건, 100%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내 삶의 스승이었던 디자인 전문가 턴불(Sara Little Turnbull)로부터 받은 벽걸이가 있다. 그 벽걸이에는 그녀가 1992년 기업 디자인 재단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했던 연설의 한 경구가 적혀있다.

"당신이 손을 뻗지 않는다면, 결코 당신은 모서리(edge)를 찾을 수 없다."

턴불은 스탠포드대학의 변화과정연구소 소장으로 코닝, 3M社와 같은 기업을 고객으로 디자인 컨설팅을 수행해온 눈부신 경력의 소유자다. 기업 디자인 재단은 턴불을 제품 디자인 개발에서 기업의 비밀무기와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턴불은 내게 자신이 만든 최고의 디자인은 실패하기 직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순간에 창조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실패하기 직전의 디자인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매 순간마다 그녀는 자신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그리고 이 과정이 결국 탁월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당신이 실패의 순간에 매번 직면하는 것에 움츠릴 필요가 없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떨어짐'이 '실패'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세계 유수 기업들의 CEO를 관찰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직관적으로 체득했는지 연구해왔다. 킴벌리 클락(Kimberly-Clack)社의 CEO 다윈 스미스는 그의 회사를 도약시키는 과정에서 '떨어짐 vs. 실패'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00년간 킴벌리 클락社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지를 생산하는 평범한 업체였다. 스미스는 종이기반 소비재에 사업의 초점을 두어야함을 깨달았다. 킴벌리 클락은 이 분야에서 '크리넥스'라는 독보적인 브랜드를 갖고 있었는데, 제록스나 코크처럼 제품명 자체가 제품군을 대표하고 있었다. 후퇴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상륙과 동시에 군함을 불태우는 장군처럼, 스미스는 과감하게 기존의 제조공장을 매각했다. 심지어 위스콘신의 킴벌리에 있는 공장도 매각하고, 모든 사업의 초점을 소비재 부문에 맞추었다. 스콧페이퍼(Scott Paper)社, P&G社와 같은 경쟁사와 정면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월스트리트는 그를 비웃었고, 많은 비즈니스 미디어는 그를 어리석다고 평가했으며, 애널리스트들은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스미스의 결정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킴벌리 클락은 지금 세계 최고의 종이 소비재 생산업체가 되어 있다.

스미스는 (크리스탈 볼에서 내가 안전한 추락을 선택했던 것과 같은) 안전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킴벌리 클락이 소비재 부문 시장에서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성공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움츠러들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이제 나는 삶을 떨어짐과 실패를 사이에 둔 선택의 연속으로 본다. 삶도 'on-sight' 등반과 마찬가지다. 다음 바위턱이 어디에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매우 모호한 상황들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런 경우 우리들 대부분은 정신적으로 패배한다. 도전하기보다는 안전한 추락을 선택한다. 그러나 떨어짐은 두려운 것일 뿐 위험한 것은 아니다. 사업의 시작, 책의 출판, 새로운 디자인의 창조 등 모든 분야에서 떨어짐이 파멸을 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한계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45살의 내 몸은 20대처럼 바위턱을 움켜잡을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나는 육체적인 힘이 감소함에 따라 정신적으로는 강해지는 방법을 배워왔다. 그리고 저 멀리 걸려 있는 바위를 향해, 멈추지 않고 '떨어짐'을 시도할 것이다.

나에게 성공의 기준은 정상 도달 여부가 아니라 내가 기울인 정신적 노력의 질을 의미한다. 이것의 나만의 성공에 대한 정의다. 나는 요즘도 등반을 즐긴다. 등반을 할 때 항상 새로운 코스를 선택하려고 한다. 떨어짐을 선택한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등반은 바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다.


확률과 결과를 구별하라

진정한 위험을 이해함으로써 성공하기, 그리고 생존하기: 75년 여름, 젊은 등반가 데이빗 브리셔즈(David Breashears)는 남부 볼더지역의 아름다운, 그러나 아직 도전해 보지 않은 바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난 몇년간 어느 누구도 이 코스의 등반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 코스는 이용할 수 있는 자연적인 보호물이 거의 없었다. 브리셔즈는 클라이밍 너트(쐐기모양의 금속 확보물을 말하는 일반적인 용어)를 고정할 틈을 찾을 수 없었다. 절벽은 5층 건물 높이 정도였고, 모서리도 날카로웠다. 게다가 85도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브리셔즈는 등반을 시작했다. 로프를 매고, 작은 너트를 몇개 챙겼다. 그러나 15m 지점에 선 그는 당황했다. 등반은 밑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올라왔어도 너트를 고정할 틈을 찾을 수 없었다. 암벽은 매우 매끄러웠고 움켜쥐기에 적당한 돌출부위도 거의 없었다. 여기서 떨어지게 되면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20Gs의 힘을 받으며 볼더(빙하가 흐르면서 옮겨놓은 표석, 암괴. 볼더링에서는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큰 바위)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또 한명의 등반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은 과연 위험한 상황인가? 그것은 당신이 어떻게 위험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데이빗 브리셔즈에게 이것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 확실히 추락의 위험은 심각했다. 그러나 추락의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데이빗은 타고난 등반가로 그에게 난코스는 단지 풀어야할 문제에 불과했지, 특별히 어려운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New York Times』誌에 수요일마다 나오는 가로세로퀴즈를 퀴즈 전문가가 푸는 것과 같다. 단지 옆에 다음과 같은 문구("당신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18m 밑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가 써 있는 것만 빼고는 말이다.

브리셔즈가 18m 밑으로 떨어져 죽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었다면 아마도 그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추락의 결과와 추락의 확률을 구분지어 생각했다. 그는 결국 등반에 성공했고 '모험적인 여행(Perilous Journey)'이라 명명된 새로운 코스를 만들었다.

가장 비극적인 사고 중의 몇몇은 등반가가 이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일어났다. 2000년 7월 6일 카메론 태그(Cameron Tague)는 'Long's Peak'의 다이아몬드 페이스 등반을 시도했다. 그는 암벽의 중간 지점까지 오르기 위해, 측면으로부터 경사진 암붕(ledge)을 따라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태그와 같은 등반가에게 지그재그 등반은 매우 쉬운 것이었으며, 좀 더 어려운 코스를 대비해 시간을 절약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는 안전 로프를 매는 것조차 소홀히 했다. 그러던 그는 등반을 하던 중 발로 지지했던 돌이 빠지면서 중심을 잃었다. 그는 뒤로 크게 비틀거렸다.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244m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추락의 확률은 매우 희박했으나, 결과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결과와 확률을 분리해 사고하는 자세는 등반 뿐 아니라 우리의 일과 삶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94년 인텔이 자사의 펜티엄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부동 십진 결점(the floating decimal- point flaw)을 처음 발견했을 때, 엔지니어들은 2만7,000년에 한번 꼴로 라운딩 에러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이 확률 자체가 매우 희박했기 때문에 인텔의 경영진들조차도 그 확률이 실현되었을 때 나타날 매우 심각한 결과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이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수학과 교수에게 발생하자 이 일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세상에 전파되었다.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Andy Grove)가 그의 책에서 밝힌 것처럼 CNN은 회사를 집요하게 몰아갔고, 언론은 회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회사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94년 12월 12일, 그로브는 더욱 충격적인 신문 헤드라인을 읽었다. "IBM, 펜티엄급 컴퓨터의 출하를 중단하다." 결국 인텔은 4억7,5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이 금액은 인텔의 한해 연구개발 예산의 절반 규모였으며, 5년간 펜티엄 광고를 위해 쓸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인텔이 이 사건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매우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후 인텔은 확률이 아닌 결과를 중심에 놓는 방식으로 경영을 변화시켰다. 현재 우리는 인텔의 펜티엄 컴퓨터를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확률과 결과를 구분지어 생각하는 자세는 기업가에게 필수다. 스탠포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개념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한 학생은 내 사무실로 들어와 다음과 같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 정말 개인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너무 위험해 보여서 IBM에 취직을 하려고 합니다."

"자네가 최선을 다해 사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고 생각해 보세.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나는 질문했다.

그녀는 "아마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겠죠"라고 대답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자네가 선택하고자 하는 방식이 사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겪고 나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가."

스탠포드 MBA 학생들에게 창업은 '떨어짐'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확실히 성공 확률은 낮다. 그러나 실패의 결과가 그리 암담한 것은 아니다. 로프가 그녀를 지탱해 줄 것이며, 그녀는 스스로 다시 몸을 추스릴 것이다. 다시 최선을 다해 암벽을 오를 수 있으며, 창업에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확률과 결과를 분리해서 사고하는 자세를 갖고 있지는 못했다.

여기서 요지는 확률과 결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 이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명 또는 당신의 회사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위험한 결과가 예측되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떨어짐을 피해야 한다. 이때 암벽이 쉬워 보이느냐 어려워 보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성공의 확률이 5% 미만일 경우라도,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것은 두려운 일일뿐 위험한 일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다.


오늘이 아닌 미래를 생각하라

어떻게 마인드의 틀을 바꿈으로써 성공할 것인가: 78년 나는 제네시스(Genesis)라는 암벽의 등반에 사로잡혀 있었다. 제네시스는 콜로라도의 엘도라도 협곡에 있는 붉은 암벽이다. 그 코스를 자유등반(free climb)한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코스에서 자유등반을 하는 것은 매우 무모하다고 생각했다(자유등반은 로프와 같은 기본적인 안전 도구 외에 어떤 다른 보조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등반이다. 자신의 힘으로만 등반을 하게 되어 있고, 자신을 끌어올려 줄 다른 일체의 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로프와 기본적인 안전장치만이 추락시 등반가를 보호해준다).

어느날 나는 매우 체구가 큰 등반가인 존 브랙(John Bragg)이 제네시스를 등반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아무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한 구역을 택해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몸을 힘차게 띄워 올려 절벽의 작은 돌출부를 찾았다. 그러나 그 이상 전진하지는 못했다. 그는 다시 떨어져 로프에 매달렸다. 그는 이 과정을 10∼20차례나 반복한 후에야 등반을 포기했다. 그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잠시라도 작은 바위턱에 매달릴 수 있다면,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을 텐데." 대학 3학년이 되기 직전에 나는 그 암벽에 과감히 도전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 역시 브랙이 시도했던 그 바위턱에 이르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학교에 돌아와 수업 사이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훈련을 거듭했다. 항상 주머니에 바늘을 가지고 다니며 물집을 터뜨려 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거듭된 훈련에도 불구하고 암벽을 등반하는데는 실패했다. 나는 육체적으로는 강했으나 정신적으로는 겁을 먹고 있었다. 내 마인드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인드를 변화시킬 것인가?

등반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한가지 패턴을 읽을 수 있다. 즉, 한세대에게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등반 코스도 두세대 정도 후에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코스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심리적인 최면을 걸어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타고난 등반가도 아니고, 가장 강한 등반가도 아니며, 가장 용감한 등반가도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미래 지향적(futuristic)인 등반가는 될 수 있었다. 나는 간단한 사고실험을 했다. 15년 후의 미래의 나에게 질문했다. "90년대의 등반가에게 제네시스는 어떻게 느껴지는가?" 대답은 종소리처럼 명료하게 돌아왔다. 90년대의 훌륭한 등반가들은 일상적으로 제네시스를 'on-sight' 등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더욱 고난도의 코스를 등반하기 위한 워밍업 정도로만 보였다. 초보 등반가들도 제네시스를 불가능한 코스로 보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은 지금이 79년이 아닌 94년이었다. 나는 소형 데이타이머 달력을 사고 연도표시를 모두 바꾸었다. 나는 협곡으로 걸어 들어가 마치 90년대의 등반가인양 암벽을 바라보았다.

이처럼 생각을 바꾼 후 나는 암벽등반에 성공했다. 내 성공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정상급 등반가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여전히 79년의 등반가들이었지만, 나는 심리적으로 94년의 등반가였다. 실제로 90년대에는 엘리트 등반가들은 제네시스를 일상적으로 등반했고, 더 이상 불가능한 코스로 간주되지 않았다. 한 영국의 등반가는 테니스화를 신고 제네시스를 오르기도 했다.

이와 같이 마인드를 바꾸는 것은 세상 모든 일에 적용되지만, 특히 기업가나 원대한 비전을 가진 사업가에게 매우 중요하다. 핵심은 기본적인 패턴을 인지하는 데에 있다. 역사적인 원근감을 갖고 현재의 패턴이 미래에는 어떠한 양상을 보일 것인가에 대한 예지가 필요하다. 79년,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를 방문한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Point-and-Click' 방식의 컴퓨터 장치, 그리고 실제 인쇄되는 모습과 똑같이 디스플레이 되는 모니터를 갖춘 데스크톱 컴퓨터를 볼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컴퓨터를 당연하게 여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화면에 나타나는 그대로 인쇄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마우스를 이용해 페이지를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79년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는 고사하고, 상용 컴퓨터에도 이러한 기능은 없었다. 잡스는 이러한 기술적 혁신이 언젠가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10∼20년 후의 컴퓨터의 모습을 상상했으며, 자신이 상상하는 기술이 미래에는 저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당대의 표준이 될 것이라 믿었다.

잡스는 세상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세상은 변했다는 마인드를 갖고 실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84년 매킨토시 컴퓨터가 출시되었다. 그 때는 시장의 수요가 이러한 컴퓨터를 요구하지 않던 때였다. 매킨토시는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IBM 등의 경쟁사들에게 경악을 안겨다 주었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숨은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잡스는 단지 제때에 앞으로 전진했을 뿐이고, 변화된 마인드로 차세대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암벽등반은 가장 큰 장애물이 암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움츠러들기 때문에 '떨어짐'으로 가는 길을 포기한다. 우리는 확률과 결과를 혼동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주저한다. 그리고 추락할 확률이 낮을 때 거드름을 피우게된다. 아마도 가장 큰 실패는 창조성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굳어져 버린 우리 마인드의 틀일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다음 세대에는 더 큰 한계를 찾아나가기 위한 준비단계 정도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바로 다음 세대에 동참하지 않는가? 왜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다니엘 부어스틴(Daniel Boorstin)은 그의 고전인 『발견자들(원제: The Discoverers, 1985)』에서 진보의 장벽은 무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과 전문 기술에 대한 환상에 있다고 주장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현재 적용되고 있는 주류 지식에 대해 아는 바가 적고, 지금 세대가 갖고 있는 제한에 속박되어 있지 않은 이들이다. 비슷하게, 등반은 우리에게 혁신적 변화(breakthrough)는 행동의 변화에서가 아니라 행동에 대한 관점의 변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등반이다.

『Fast Company』 (美)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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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제원이 홈에서... 그리고 내생각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