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2. 23:25ㆍ예술/미술
Johannes Vermeer, 1632~1675.
Frans Hals, 램브란트 Rembrandt와 함께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 Golden Age를 이끄는 3대 거장이다.
얀 베르메르는 거의 잊혀져 있다가 사진의 발달과 함께 주목을 받게된 특이한 사례이다.
그의 그림이 마치 사진을 찍었을 때와 같이 빛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뒤 늦게 발견된 것.
다른 말로 하면, 엄청나게 정교한 관찰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화가이고,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달리 1년에 두 세 점 그리는 정도의 느린 작업 속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그림 자체는 사실 주의적인 명확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배후에 있는 상징성은 명확하지 않음을 특징으로 해서, 후대에 많은 해석의 여지를 주고 있다.
히틀러는 아래의 '회화 예술'이라는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 했으며, 자신이 구상한 세계 최대의 미술관에 전시할 대표 작품으로 점 찍고 있었다.
실제로 히틀러가 발간한 국민의 예술 (Kunst dem Volk) 도록의 표지에 이 작품이 쓰여 졌다. 이 작품은 비엔나에서 강탈하여 다른 8천 여점의 회화와 함께 한 소금 광산의 지하 공간에 보관되어 있다가 회수 되었다.
베르메르가 어려운 생활 가운데도 끝까지 팔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작품이기도 한 'The Art of Painting'은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영화' 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다. 아마도 그림 속의 화가는 베르메르 본인일 것이고, 모델인 여성은 클리오 Clio 여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월계관을 쓰고, 트럼펫과 두꺼운 (노란색) 책을 손에 들고 있다.
클리오 Kleio 는 제우스의 딸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신들을 통해 공연과 창조의 과정을 생각해 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아홉 여신 중의 하나이다. 뮤즈라고도 하고, 무사 혹은 무사이라고도 불리운다. 클레오는 역사의 뮤즈이며, 명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책을 들고 있고, 영광의 월계관과 승리의 트럼펫을 들고 있는 것이다. 히틀러가 이러한 상징성과 자신의 제국을 동일시 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베르메르는 왜 모델로 클리오를 내세웠을까?
그는 자기가 지금 당장은 명성이 없지만, 죽고 나서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 정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화가의 꿈과 치열한 예술혼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는 베르메르의 색이라고 불리우는 노란색과 파란색이 작품의 중심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죽는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을 작가의 모습을 그려보며 아련한 감상에 젖는다. (그는 불과 44세의 나이에 병으로 급사했는데,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큰 영향을 준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르메르 (현지 발음으로는 페르메이르에 가까움)의 가장 유명한 작품.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가상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영화와 달리, 학계에서 주류를 이루는 의견은 이 작품이 특정 모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트로니 Tronie라는 것이다.
트로니는 고유의 의상을 입은 특별한 인물 유형을 대표하는 사람을 그린 가슴 높이의 초상화를 이르는 말로,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국적인 인물 유형이라는 것.
아뭏든, 그의 그림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아무런 배경이 없는 이 그림은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애칭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베르메르가 남긴 단 두점의 풍경화 중 하나.
'델프트 풍경' View of Delft.
그는 평생을 이 도시에서 보냈으며 아마도 그가 운영하던 여관에 있는 작업실에서 내다 보이는 풍경을 그렸을 것으로 짐작 된다. 도시 남쪽의 스히 Schie강 건너에서 도심이 있는 북쪽을 바라본 풍경인데, 그림의 시계는 오전 7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오른쪽 아래 신교회의 첨탑에서 건물하나를 지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작은 노란벽은 마르셀 프루스트 때문에 유명해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 5편 '갇힌 여인'에서 작가 베르고트는 이 그림을 보다가 죽었다. 그는 병에 걸려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음에도 파리에 와서 전시된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다. 작품 앞에서 "드디어 노란색 작은 벽면의 값진 마티에르를 발견"하고 "나도 이처럼 글을 썼어야 했"다고 말하다 쓰러져서 죽는다. (이 부분은 네이버 케스트 테마로 보는 미술 '베르메르' 편 참조)
베르고트를 빌려 표현한 푸르스트의 마음을 알 듯 모를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