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덜린 Hölderlin

2013. 5. 19. 14:11예술/etc.

가정교사로 들어갔던 집의 부인에게서 이상형을 발견하여 사랑에 빠지나, (26세 때)

 

2년 여만에 소문이 퍼지고, 남편이 알게되어 모욕을 당하고 쫒겨난 후,

 

약 3년 후 그 부인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정신 분열에 빠져 그 이후 40여 년을 정신병으로 고통 받다 죽다.  

 

부인과의 사랑은 손을 잡는 정도 였던 것으로 휠덜린의 표현에 의하면

 

' 이 비참한 시대에 나눈 영원하고 성스러운 우정' 이었던 것.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의 사랑이 이런 비극으로 끝난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는 지도 모른다.

 

안톤 슈나크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휠덜린의 시'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튀빙겐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헤겔, 셀링과 친한 친구로 지낸다.

 

휠덜린도 헤겔, 셀링에 못지 않은 날카로운 직관과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다만, 그는 그것을 시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사실이다.

 

 

 

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저자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출판사
유로 | 2012-03-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주제에 따라서 읽는 횔덜린 시선『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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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 휠덜린

 

뱃사람은 즐거이 고향의 고요한 흐름으로 돌아간다,

고기잡이를 마치고서 머나먼 섬들로부터.

그처럼 나도 고향에 돌아갈지니,

내가 만일 슬픔과 같은 양의 보물을 얻을진대。

 

지난날 나를 반기어 주던 그리운 해안이여,

아아, 이 사랑 슬픔을 달래줄 수 있을까.

젊은 날의 내 숲이여 내게 약속할 수 있을까,

내가 돌아가면 다시 그 안식을 주겠노라고。

 

지난날 내가 물결치는 것을 보던 서늘한 그 강가에

지난날 내가 떠 가는 배를 보던  흐름의 그 강가에

이제 곧 나는 서게 되리니 일찌기 나를

지켜 주던 그리운 내 고향의 산과 산이여。

 

오오, 아늑한 울타리에 에워싸인 어머니의 집이여

그리운 동포의 포옹이여 이제 곧 나는

인사하게 될지니, 너희들은 나를 안고서

따뜻하게 내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리라。

 

진심을 주는 이들이여,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안다네,

사랑의 슬픔 그것은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의 위로의 노래 부르는 요람의 노래는

내 마음의 이 슬픔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하늘의 불을 주신 신들이

우리에게 신성한 슬픔도 보내 주셨나니,

하여 슬픔은 그대로 있거라, 지상의 자식인 나는

모름지기 사랑을 위해, 또 슬퍼하기 위해 났느니라

[출처] 고향 - 휠덜린|작성자 Herman

 

           운명 Das Schicksal  中 일부 (묘비에 쓰여짐)

 

폭풍 중 가장 성스런 폭풍 가운데

나의 감옥의 벽  허물어지거라.

하여, 보다 찬란하고 자유롭게

 

내 영혼  미지의 나라로 물결쳐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