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Nepal Overview

2010. 9. 16. 15:14여행/네팔 (2010)



인도, 티벳, 중국, 부탄, 방글라데시와 접해 있거나 가까이 있는 내륙국가로, 티벳과의 관계가 가까우나 중국이 사실상 티벳을 점거하고 있는 관계로 중국의 눈치와 압력도 많이 받고 있는 나라다.





인구는 약 3천만 명 정도이고 힌두교가 81%, 불교가 11%, 이슬람교가 4% 정도를 차지하는 국가임.
100개 이상의 카스트가 있는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인도보다 느슨하고 개방적인 형태를 보임.

국토의 면적은 141,181 제곱킬로미터로 그리이스 보다 약간 크고 남한의 100,032 제곱킬로미터의 약 1.4배에 해당함. (남북한 합계 221,336 제곱킬로미터 보다는 작음)

인당 GDP는 2009년 현재 약 451 USD로 한국의 17,075 USD에 비해 40분의 1에 불과함.

하루 2 USD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의 비율이 82%인 매우 가난한 나라이지만 부자들은 최근 급등한 부동산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거나, 공직생활에서의 부정 부패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등 여느나라 부자들 못지 않은 재력을 갖추고 있어,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임.

그러나 카트만두 시내에서 명품 판매점이나 명품을 찾아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음.
제일 좋다는 백화점도 분위기가 소규모 지방 백화점 같은 느낌이었음.

평균 수명은 62세 정도이고 수도 카트만두는 오래된 자동차들과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으로 공기가 무척 안 좋지만 시골로 접어들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쉽게 느낄 수 있음.  개인적으로, 유럽 알프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함.

네팔은 2008년 5월 28일 연방 공화국으로 거듭나면서 수백년 간 이어져 온 왕정이 종식되었음.
현재 왕궁은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고 짐검사를 심하게 하는 등, 예전 왕궁이었을 때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 (왕궁의 수준은 내가 둘러본 왕궁 들 중 가장 검소했는데... 큰 집 하나, 넓은 정원 하나 이런 정도의 수준.)

네팔의 역사는 카트만두 계곡에서 시작되고 이곳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함.

기원전 7~8세기 경 베일에 쌓인 몽골계 힌두교도 끼라티 족 Kiratis와 함께 역사 시대가 시작 되었으며, 기원 전 6세기 경 (B.C. 563년) 룸비니 Lumbini 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나 불교를 창시했음.
(난 지금까지 부처님이 인도 출신인줄 알았었는데;;;; 네팔 출신이었구나. -_- )
룸비니는 인도 국경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음. (네팔 중남부 지방)

이후 릭차비 족 Licchavis이 인도 북부에 정착하면서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의 부흥이 시작됨. 이들은 4-9세기 인도와 중국 간 교역을 통해 문화의 전성기를 누렸고 짱구 나라얀 사원과 카트만두의 옛 마을들에서 이 시대에 건립된 짜이땨 Chaitya와 기념물들을 볼 수 있다고 함.

7세기 말 부터 13세기 까지는 암흑기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함.

1200년 경 인도에서 도래한 말라 족 Malla 출신의 왕이 카트만두 계곡에서 왕으로 등극함. 교역로 문제로 티벳과 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후 약 550년 간 황금기를 구가함.

1482년 세 아들의 권력 다툼으로 카트만두 계곡은 박따뿌르, 카트만두, 빠딴의 세 왕국으로 나뉘어짐.
네팔의 나머지 지역은 50여개의 소국가로 쪼개어져 있었다고 함. 세 왕국은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해 나감.
이 시기에 예술의 발달과 더불어 많은 네팔적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함. 예를 들면 현세의 여신 꾸마리 Kumari 숭배사상 등.

1769년 작은 산악 왕국 고르카 Gorkha의 통치자 쁘리트비 나라얀 샤 Shah 는 세 왕국을 함락 시켜 네팔 통일을 달성하였음. 샤는 카트만두로 수도를 옮기고 최근까지 지속된 샤 왕조를 창건했음. (네팔 건국의 아버지)

이후 영국와 충돌하며 꾸준한 영토 확장 전쟁을 벌였으며 영국에 패전하여 1816년에 체결한 수가올리 Sugauli 조약으로 전쟁이 중단되고 오늘날의 국경이 확정 지어짐. 이 때 구르카 족 용병의 활약에 감동한 영국군은 이들을 영국군에 편입시켰으며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음. 카트만두를 돌아다니다 보면 구부러진 형태의 다양한 구르카 단검을 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음.

이후 1951년까지 네팔은 문호를 닫아버렸으며 카트만두에 거주했던 일부 영국인들만이 130여년 이상 네팔을 지켜본 유일한 서구인이 되었음.
1846년 젊은 체뜨리 Chhetri 귀족 출신인 중 바하두르 Jung Bahadur가 여왕의 묵인 하에 왕국에서 가장 유력한 귀족 55명을 카트만두 두르바르 광장의 꼬뜨 Kot (성채)에서 살해하고 권력을 차지함. 중 바하두르는 총리대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가문의 이름을 '라나' Rana로 바꿈. 이후 라나 가문은 왕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실질적 권력을 차지함. 샤 왕조의 왕들은 명목상의 통치자로 내려앉고, 철저하게 라나의 통제를 받게 됨.

30만 명이 넘는 네팔 군이 제 1차, 2차 세계 대전에 참여했으며 1950년 샤 왕조의 뜨라부완 왕이 인도에 망명한 후 라나 가문을 몰아내고 권력을 되찾음 (1951년 네팔 복귀)

그러나 샤 왕조가 되었건, 라나 가문이 되었건 국민들을 위한 정치 보다는 사리사욕을 채우고 가문을 우선시 하는 정치를 펼쳐, 정국은 혼란에 빠지고 폭동과 진압이 일상화 됨.
1990년 초 정부는 20만 명의 평화적 시위대에 총탄, 최루가스로 대응하고 수천 명을 체포 했으나 4월 9일 결국 비렌드라 왕이 입헌군주의 역할을 받아들이겠다는 발표를 하게 됨. 이게 네팔 민주주의의 시작. 

마치 우리나라의 4,19 혁명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보면 됨.
그러나 우리나라도 4.19 이후에 5.16,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많은 굴곡이 있었던 것처럼 네팔도 순탄치 못한 과정을 겪고 있음. 1991년 선거가 치러지고 의회가 성립되었으나 1990년대 말 연정이 깨지고 정부가 와해 되었으며 1996년 공산당의 분파인 마오주의자들은 '인민 전쟁'을 선포하고 폭력사태가 네팔 중서부를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함. 
카트만두의 정치가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마침내 2001년 마오주의자들은 휴전 협약을 파기하고 카트만두 서부 지역의 군시설을 공격하여 내전이 발발함. 이들 공산반군은 한때 국토의 40% 이상을 장악함.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이들 공산반군의 활동은 역설적으로 원조 중단 및 교량 폭파, 통신 차단, 도로 파괴 등으로 시골 지역의 가난을 부채질 하는 효과를 가져옴. 2005년까지 13,000여 명이 내전으로 목숨을 잃었음.

또한 2001년 6월 1일에는 황태자 디뺀드라가 10 명의 왕족 전체를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짐. 디뺀드라는 마지막에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현장에서 숨지지 않고 병원으로 옮겨져 혼수 상태에서 국왕으로 선포 되었고 이틀 후 사망함. 네팔의 왕실에서는 수백년 동안 암살과 살인이 일상 다반사로 일어나기는 했으나 이 사건만큼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은 없었다고 함.
이후, 새로 국왕이 된 갸넨드라와 그의 아들 빠라스 (사건 현장에 있었으나 살아남음)이 의혹의 대상이 되었으나, 진실은 저 너머에.  -_- 

이후 2006년 4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결국 의회 민주주의로 회귀하며 국왕이 실각하고 2008년 4월 10일 선거에서 왕정 자체가 폐지됨.(560대 4: 아마도 살인 사건의 의혹이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됨)
왕이 실각하자 2006년 내전은 종식되었고 2008년 선거에서 공산반군이 다수당이 됨.

2010년 9월 현재의 네팔 상황은 아직도 혼란의 도가니로 보여짐. 내전이나 시위, 폭동은 없어졌지만, 정치가들은 자기 잇속을 채우기 위해 부정 부패를 일상화 하고 있고,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미래가 없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음. 새 헌법을 정하기 위한 선거가 7번이나 치러졌으나 아직도 결정이 되지 못하고 있음.

이러한 현실 정치의 어려움과 역사는 힌두교와 결합하여 네팔인들 특유의 숙명론을 낳았음. 어깨를 으쓱하며 케 가르네 Khe Garne라고 하는데, 뭘 할 수 있겠어? 라는 뜻이라고 함.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와 네팔의 현재가 Overlap 되면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음.

네팔인들은 동남아 쪽과 달리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경향이 큼. 예전에 한국인들이 60~70년대에 노력했던 것 이상으로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음. 빨리빨리 정신도 카트만두 시내에 나가보면 바로 느낄 수 있음. 쇼트트렉에서 한국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일지도 모름.

문화적 잠재력을 비롯해, 정신적 잠재력도 큰 나라인데... 정치가 문제임.
경부 고속도로같은 것도 없으며, 초기의 박정희도 없고, 욕심많은 정치가들만 존재함. 민중들은 고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