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대표

2013. 6. 18. 11:29People

조선일보 기사라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기사로 판단해 봤을 때는 훌륭하신 분 같다.

 

다만, 혼자 너무 앞서 가신 건 아닌지, 시대를 앞서 갔던 많은 사람들 처럼 좌절을 경험한 것은 아닌지...

 

독자기술을 강조한 그 정신은 정말 좋고, 중요한 것이지만... 이 기사처럼 그게 이 분 혼자서 연구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인지... 팀이 있었을 텐데... 물론 가장 중요한 분이셨겠지만...

 

보수 단체 회장이라는데, 이미 반공은 공산주의가 퇴조하면서 한물 간 흐름인데 어릴 적의 트라우마 때문에 여기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조선 일보가 기사에 장난을 많이 치니까...

 

KAIST에서 있었던 일화도, 마치 최근에 대통령이 우리나라 학생들의 70% 이상이 6.25를 북침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하며 전교조와 역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매국노 이승만, 친일파 독재자 박정희를 미화 하는게 훨씬 더 큰 문제지...)

 

왜냐하면, 사실상 전교조에서 주장하는 것은 북침이 아니라, 미국과 이승만 정부가 남침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고,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먼저 쳐들어 온 것이 북한인 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식할 수많은 증거들이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북침'이라는 단어를 애들이 '북한이 침입한 것'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마찬가지로, 현대중공업 대표 출신의 교수님이 (하늘 같은 선배님이) 강의를 하면서 현대 중공업 CEO 때의 일을 포함해서 마음껏 궁굼한 것을 질문하라고 했는데, 어떤 기업, 종목에 투자하면 좋겠냐는 식의 질문만 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사건.

 

요새 공대생들이 그렇게 투자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란 말인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사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오히려 기사의 진정성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래도 일주일에 2번씩 밤새고 바로 임원회의에 들어왔다든지 하는 건... 설마 사실이겠지.

 

아뭏든 글을 쓰다보니.. 좀 아리까리 한 부분이 많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7/2013061702420.html?news_top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이력은 그 자체로 ‘입지전(立志傳)’입니다. 미국 유학시절 미숙아를 둔 가장(家長)이라는 힘겨운 짐을 지고 고학(苦學) 끝에 MIT 박사가 됐고, 귀국해서는 대우조선을 거쳐 현대중공업(CEO) 최고경영자로서 ‘대한민국 조선산업 세계 1위’을 만들고 수성(守成)까지 했습니다.

 

美MIT대학원 문제보다 쉽게 다섯문제를 출제했더니 평균 점수가…

올해 1학기 KAIST에서 강의한 ‘해상풍력에너지’라는 과목은 석·박사 과정을 상대로 한 정식 공학 수업입니다. 강의 준비를 위해 그는 미국 UC버클리와 MIT 유학시절에 썼던 엄청난 분량의 강의 노트들까지 가져와 수업 준비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정교수로 부임하기 전엔 학점을 주는 세미나를 맡았습니다. 그때 UC버클리와 MIT에서 초급 대학원생이 배우는 내용을 더 쉽게 바꿔 5개 문제를 출제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평균 80점 정도가 나오는 문제여서 최소 그 이상의 성적을 기대했다고 하는군요.

기대와 달리 KAIST 학생들의 성적은 평균 30점 정도였다고 합니다.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고 정답을 풀어주는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학과 측에서 “학생들이 실망할 수 있으니 제발 참아달라”고 해서 그만뒀다고 합니다.

==> 좀 이해는 안간다. 이야기를 하면 되지, 학교가 그걸 어떻게 알고 반대를 하지? 교수가 강의실에서 무슨 이야기 할지 학교에 일일이 다 상의하나? ;;;

 

민 전 회장은 “학생들이 베이식(basic)한 컨셉을 이해하는대신 그냥 암기하는 건 아닌지”라고 걱정하더군요.

==> 사실 이게 핵심이지.. 한국 애들이 다 공부를 이런 식으로 한다. 스스로 생각을 안 함.

 

한번은 강의를 하다 크게 화를 내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현대중공업 CEO 때의 일을 포함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 마음껏 질문해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떤 기업, 종목에 투자하면 좋겠느냐”는 식의 질문만 잇따라 하더라는 겁니다. 성질 급한 민 전 회장은 “질문 같은 질문 좀 하거라, 이놈들아!”라며 버럭 화를 내고 만 것입니다.

그는 보수 시민단체 대표를 맡아 “칼럼을 써 언론에 돌리는 정도로 해서는 절대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젊은 대학생들을 포섭하자”는 등의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내면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3/2013050301388.html

그가 처음 선택한 기업은 대우조선이었다. 그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대우조선 기술담당 전무 겸 기술연구소장으로 일했다. 김우중 회장은 경기고 4년 선배였다. 그를 "인마"라고 부를 만큼 격 없이 대했다. 하지만 김우중은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술 개발 책임자로서 김 회장에게 '독자 기술을 개발하고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 브랜드로 수출하고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자 김 회장은 '기술은 사오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엔, '대마불사(大馬不死)야. (이것저것) 벌리면 돼'라고 일축했다. 후일 아드님 교통사고 때 문상을 갔더니 '네 말 들을 걸 그랬어'라고 후회하셨다."

1990년 4월 3일 새벽 6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라이벌 회사의 총수였던 정주영 회장이 예고 없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48세 민계식은 75세 정주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 회장은 말했다. "이제, 오시는 겁니다."

그날 민계식은 김우중 회장을 찾아갔다. "기술 개발 할 겁니까? 안 할 겁니까?" 대답은 역시 '노(No)'였다. 그는 사표를 내고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주영 회장은 달랐다.

"우리가 뭘 해보겠다고 하면, 명예회장님은 '그거 일본 사람이 해? 서양 사람이 해?'라고 물으셨다. '그들이 합니다'라고 답하면, '그럼 우리가 왜 못 해? 해봐!'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걸 해보면 좋겠습니다' 하고 보고하면 '왜 좋아?', '얼마나 봐줘?' 하고 물어보셨다. 이유를 설명하고 '당장은 못 벌겠지만 한 3년쯤 되면 돈 벌 겁니다' 하면 '그래 3년 기회 줄게. 해봐'라고 하셨다.
==> 이래서 정주영 회장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공과는 있겠으나...


상벌이 엄했다. 울산에 오실 때면 부사장급 이상 중역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빙빙 돌다가 갑자기 누군가를 걷어차며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할 때가 있었다. 나중에 보면 그 중역은 반드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공이 많다는 사람들은 불러서 턱턱 주셨다."

(중략)...

 

"현대중공업에 부사장으로 와서 보니 독자 엔진이 없었다. 배 한 척당 3~4대 들어가는 발전용 중형 엔진을 3년 안에 국산화하겠다고 당시 사장한테 보고를 했다. 그런데 그는 '엽전들 주제에 무슨 엔진 개발을 한다고…. 미친 자식!'이라며 보고서를 패대기쳤다. 결국 공식 지원 없이 개발을 시작해 7년 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완성 직후 힘센 엔진은 사라질 뻔했다. 배를 파는 부서에서 "한국산 엔진을 쓰면 선주들이 배를 안 산다"며 장착을 거부한 것이다. 민계식은 뜻이 맞는 중역과 독일 최대 컨테이너 선사를 뚫었다. "우리 걸 6개월만 써보라. 그때도 괜찮으면 돈을 내고 마음에 안 들면 너희가 원하는 엔진으로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3개월 뒤 엔진 값을 모두 받아냈다고 한다.

2000년에 8대가 팔린 힘센 엔진은 지난해 2200대가 팔렸다. 세계 시장 점유율 28%. 1위다. 이 엔진은 육상 발전용으로도 쓰인다. 힘센 엔진 발전기는 지구 반대편 쿠바의 전력난도 해결했다. 쿠바는 10페소 지폐에 힘센 엔진 발전기를 그려 넣었다.

 

(중략)...

 

민계식은 미쓰비시가 현대중공업에 뒤진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직원 수 3만5000명. 현대중공업보다 1만명이 많다. 못 만드는 게 없는 기술을 가진 미쓰비시가 왜?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미쓰비시는 철저히 임기제다. 상무 2년-부사장 2년-사장 2년-상담역 2년씩이다. 2년 동안 뭘 할 수 있나. 결국은 무사안일, 현상유지다."

그는 "비실비실한 회사가 다시 일어나고, 잘되는 곳이 망하는 건 결국 한 사람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략)...

 

"어떤 나라가 선진국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공자는 식(食)과 병(兵)과 신(信)을 국가 경영의 세 요체로 꼽고 셋 중 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수제자인 안회가 '먹지 않으면 죽지 않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사람은 어차피 한 번 죽지만 신이 없으면 사회가 아예 존립하지 못한다'고 했다. 내 나이 예순이 넘어서 그 말씀을 이해했다. 유대인은 돈을 꿔도 차용증을 안 쓴다. 신뢰가 있으면 모든 일이 빠르고 편해져 효율적이다. 지금 우리에겐 신이 없다."

민계식은 "경제 발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보수단체들이 경제성장이라는 박정희 시대의 공(功)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세계 제일의 반공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종북국가가 돼버린 역설은 반공을 정권 유지에 악용한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