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D장조 D850

2011. 5. 12. 13:11예술/음악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게, 이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이해가 간다.

그에게는 직관력이 있고, 그걸 풀어서 설명할 줄 안다.






"나는 운전할 때 곧잘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크게 틀어놓곤 하지. 왜 그러는지 알겠어?"
"몰라요"하고 나는 말한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이 피아노 소나타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야. 특히 이 D장조 소나타가 그래.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곡이거든. 이 작품의 한두 악장만 독립적으로 연주하라면, 어느 정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있다고 해. 그러나 네 개의 악장을 통틀어 통일성을 염두에 두고 들어보면, 내가 아는 한 만족할만한 연주는 단 하나도 없어. 지금까지 여러 다양한 명피아니스트가 이 곡에 도전했지만, 그 어떤 연주도, 느낄 수 없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거든. 바로 이 연주만은 결함이 없다고 할 만한 연주는 아직 없다. 왜 그런지 알아?"

"모르겠어요" 하고 나는 말한다.
"곡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야. 로베르트 슈만은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의 뛰어난 이해자였지만, 그런데도 이 곡을 '무지무지 장황' 하다고 평했지."
" 곡 그 자체가 불완전한데 어째서 수많은 명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에 도전하는 걸까요?"
"좋은 질문이야."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리고 사이를 둔다. 음악이 침묵을 채운다. " 나도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어. 하지만 하나만은 말할 수 있지. 요컨데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 적어도 어떤 종류의 인간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어당긴다는 거야. 예를 들어, 너 소세키의 <고후>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지? <코코로>나 <산시로> 같은 완성된 작품에는 없는 흡인력이 미완성의 작품에는 있기 때문이지. 너는 그 작품을 발견한 거야. 바꿔 말하면, 그 작품이 너를 발견한 셈이지.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고 그것과 마찬가지야. 그 음악에는 그 작품이 아니고서는 바랄 수 없는 마음의 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하고 나는 말한다.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 가는데요, 어째서 오시마 상은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듣는 거죠?  특히 운전하고 있을 때? "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특히 D장조 소나타는 곡 그대로 매끈하게 연주해서는 예술이 되지 않아. 슈만이 지적한 것처럼, 소박하고 서정적인 목가와 같이 너무도 길고 기술적으로도 지나치게 단순하거든. 그런 것을 악보 그대로 연주하면 아무 맛도 없는 흔해 빠진 골동품이 되어버려.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기교를 구사해. 장치를 마련하는 거야. 예를 들면 이런식으로 Articulation을 강조하거나, 루바토로 하거나, 빨리 치거나, 강약을 궁리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장치는 흔히 작품의 품격을 무너뜨리게 되고, 슈베르트의 음악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되어버려. 이 D장조 소나타를 치는 모든 피아니스트는 예외없이 그런 이율배반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내가 운전하면서 자주 슈베르트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야.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게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의미에서든 불완전한 연주이기 때문이지.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 주거든. 이것 이상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음악과 완벽한 연주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간, 눈을 감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D 장조 소나타에 귀를 이울이고, 거기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환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그것이 나를 격려해 주거든. 내가 뭘 말하는 지 알겠어?"

"대충은요."
"미안해"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열중해 버린다니까."
"하지만 불완전함에도 여러 종류와 정도가 있지 않을까요?" 하고 나는 묻는다.
"물론이지"
"비교적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들었던 D장조 소나타 가운데서 오시마 상이 가장 뛰어난 연주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의 연주인가요?"
"어려운 질문인데" 하고 그는 말한다.

그는 한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기어를 바꿔 추월선으로 들어가 운송회사의 대형 냉동트럭을 민첩하게 추월하고, 기어를 바꾸어 주행차선으로 돌아간다.
"겁줄 생각은 아니지만, 녹색 로드스타는 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차종의 하나야. 차체가 낮고, 색깔이 어둠에 뒤섞여 버리니까 말이야. 특히 트레일러의 운전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해. 특히 터널에서는 진짜 스포츠카라면 차체를 빨간색으로 해야 해. 그래야 눈에 잘 띄니까. 페라리에 빨간색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지." 하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녹색이 좋거든. 설사 위험하더라도 녹색이 좋아. 녹색은 숲의 색깔이지. 빨강은 피의 색깔이고."
그는 손목시계를 본다. 그리고 다시 음악에 맞춰서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연주로서는 가장 잘 마무리가 되어 있는 것은 아마 브렌델과 아슈케나지일 거야. 하지만 나는 솔직히 그들의 연주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아니,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고 할까. 내 생각에는 슈베르트의 음악은 사물의 본연의 상태에 도전해서 깨지기 위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어. 그것이 로맨티시즘의 본질이고, 슈베르트의 음악은 그런 의미에서 로맨티시즘의 정수지."

나는 슈베르트의 소나타에 귀를 기울인다.
"어때, 지루한 곡이지?" 하고 그가 말한다.
"네, 확실히" 하고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슈베르트는 훈련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야. 나 역시 처음에 들었을 때는 지루했어. 네 나이라면 그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그런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야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가지를 구별하지 못하는게 보통이지만." 



 - 해변의 카프카 by 무라카미 하루키.




Arthur Schnabel의 1939년 레코딩.  나는 개인적으로 이 소나타가 전혀 지루하지 않던데.... 이것을 듣지 않고 글만 읽었더라면 정말 지루한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게 이야기 꾼이 주는 환상. 


https://youtu.be/KMzp4jQfM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