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소년 코난 - 라나는 코난의 뺨을 때렸다

2020. 9. 12. 03:12책 & 영화

일본에서는 1978년에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는 1982년~1983년에 방영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다. 지금 보면 헛점들이 보이지만 어릴때 그만큼 충격적으로 재미있고 자극이 되었었다. 

 

원작 소설이 있는데 알렉산더 케이 Alexander Key 의 'The incredible Tide' 

 

구체적인 스토리는 전혀 다르고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하고 큰 뼈대만 비슷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원작에 대해서는 만화영화의 발상의 방아쇠'라고 생각한다고 함. 

 

어차피 원작은 미소 냉전을 비유하는 암울한 내용이라 그대로 가져와서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상황. 

 

다만 바다새 티키와 라나의 교감이라든가, 해일, 텔레파시 등은 원작에서 가져온 설정. 

 

원래 소련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몬스키는 한국판에서 그대로였지만 일본어 원판에서는 몬슬리, 레프카는 레프코, 라오 박사는 로아 박사였다. 코난은 동일하다. 다만 라나는 우리가 나나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라나 Lanna 가 맞다. 

 

인더스트리아와 삼각탑은 어린 나에게 정말 흥미로왔던 설정이었다.

 

아뭏든, 새새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딱 하나, 제목에 나와있듯이 라나가 코난의 뺨을 때린 장면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하이하바에서 오로 패거리에 맞서는 코난과 이를 말리는 라나. 

 

라나는 이미 끼어들면서 다친 상처가 얼굴에 보인다

 

코난을 공격하려는 오로에게 라나는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유품 목걸이를 주면서 대신 코난을 공격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코난은 저따위 녀석에게 그런 소중한 물건을 주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앞을 막고 있던 라나를 밀치게 된다. 

 

따라서 감정이 격해진 라나는 무심결에 코난의 따귀를 때리고... 정적. 

 

실제로 이렇게 굳은 장면이 한 2~3초 정도 그대로 나온다. 

 

 

때려놓고 자기도 놀란 표정.. 코난도 맞아놓고 어리둥절한 표정. 

 

지금까지도 라나는 내게 이상형의 여성상인데, 의외로 이런 장면이 있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코난도 맞고서 충격이었겠지만, 나도 충격이었다.  라나가 코난을 때리다니...????   내가 남자 뺨 때리는 여자를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었던 거야? 그런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없이 걷던 라나는 결국 갑자기 주저앉아 울며 코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코난도 자기가 먼저 밀친게 문제였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여자를 만나는데 걸림돌이었던 것은, 감정의 기복이 크고 성질을 부리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알레르기가 있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이제보니 여자는 그게 정상인가보다. ??????  

 

그런데 내가 현실감각 없이, 안 그런 여자를 찾다보니 지금 이 시점에 이른 것 아닌가? 

 

아무리 처녀자리라도 그렇지... 나는 인간 세상에서 유토피아같은 이상향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가? 

 

내가 정말 운이 좋게 라나같은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었다고 해도, 어느 순간 라나가 내 뺨을 때릴거고, (실제로 맞아 본 적은 없다만, 상징적으로) 그러면 나는 생각하겠지. '이렇게 폭력적이고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여자랑 어떻게 일평생을 함께할 수 있겠어?' 

 

그러고 이별을 통보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대략 그런 흐름이 다수 있었다. 

 

오늘 반 백년 살고서 코난을 다시 보다가 뭔가 현타가 왔다. 

 

나는 뭐한거지? 

 

뭔가 믿었던 기반이 무너지는 느낌도 있고, 결혼이라는 현실은 결국 내 생각과 다른 거였다는 현타가... 다들 그러고 사는 거였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뺨을 안때릴 여자가 아니라 뺨을 맞아도 내가 화가 나기 보다는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여자를 만나는 거로. 

 

아, 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구나.  좋은 여자가 벌써 여럿 지나갔는데... -_- ;; 내일 보다는 빨리 깨달아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