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2020. 8. 30. 00:59책 & 영화

Le vent se lève!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인다! 살아내야겠다!

 

- 해변의 묘지 Le ciemetière marin by Paul Valéry 

 

(원래 번역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이지만 정확한 뜻은 이에 가깝다. 물론 시적인 운율은 원래 번역이 좀 더 나아 보이긴 한다만... 

 

비행기라는 대상이 핵심인 이 작품에서는 단순히 바람이 분다 가지고는 느낌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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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는 '들어올리다'라는 뜻이 있어서 바람이 밑에서 위로 불어올라가는 상승기류의 느낌이 있고, tenter는 '꾀하다, 시도하다'의 뜻이 있어서 삶을 살아내야한다는 느낌이다.  역시 번역은 어렵다. 특히 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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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발레리란 인간 자체가 정말 똑똑하고 엄청난 인간이라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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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애니메이션 2013년 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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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일본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작품상. 2013년 일본영화 흥행 1위.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Top 10에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 5개가 올라 있는데 그 중 5위 성적.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제대로 흥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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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개봉 당시에 정말 보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못 보고 최근 넷플릭스로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본 후 감동의 마음을 안고 포스팅을 하려고 네이버를 찾아봤다가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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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네티즌 평점이 4점대로 너무 낮은데다가... 관객평이 온통 테러 수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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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떨어뜨린 핵폭탄을 만든 오팬하이머의 열정과 사랑을 다룬'핵폭탄이 터진다' 국내에서 시급히 제작해서 일본에서 상영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낭만적이고, 서사적이고, 오펜하이머의 열정을 아름답게 그려서 ..."  --> 이 따위 글이 제일 위에 올라와 있었고, 가장 앞 페이지의 글들이 전부 이런 맥락이었다. 평점은 모두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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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의 수준에 실망했고, 미야자키 감독에게 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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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들아, 이 영화는 반전 영화라고!  일본 우익이 엄청나게 깐 영화라니까!  도대체 영화를 보기는 하고 평점 테러를 한 거냐? 봤는데 그랬으면 머리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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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미래가 정말 어둡다. 이런 문해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어떻게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겠는가? 좁쌀같이 조그만 마음과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진정한 섬나라 인간들 같으니라고. 일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지만 느네도 만만치 않다 정말!!! 혐한 가지고 뭐라고 할 계제가 아니다. 반일 감정이 전혀 이상한 맥락에서 엉뚱하게 쓰이고 있잖아!!!! 바보들!!! 느네들 지성 수준을 점수로 만들면 아베총리하고 비슷한 수준이라고!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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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감동적으로 봤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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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만드는데 거기다가 일제시대 침략을 사죄하는 내용을 넣으라는 억지는 도대체 ..... 창피하다 창피해. 그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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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의 대사에서 반전 메시지와 전시 일본 정부에 대한 비난,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이 녹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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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센을 설계한 핵심인물인 호리코시 지로를 가져와서, 호리 타츠오가 쓴 동명의 소설 '바람이 분다.' 속 결핵에 걸린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와 결합해서 만든 스토리라인이다. 그러니까 제로센을 만드는 이야기와 결핵에 걸린 연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바람이 분다'의 뼈대인 것이다. 엔딩에도 호리코시 지로와 호리 타츠오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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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애니속 주인공인 지로를 실존인물과 싱크로가 맞네 안맞네 하면서 시비 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차피 애니속 지로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굳이 주인공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시험비행이 성공하는 그 순간에 그는 전혀 기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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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그의 꿈의 공간은 파괴된 제로센들로 덮여 있는 들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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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너덜너덜했지만요." 그렇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끝은 군국주의 일본과 함께 너덜너덜했다. 이게 오히려 현실적이다. 가장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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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결국 한 대도 안 돌아왔어요."   붉은돼지와 통하는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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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로니 백작: "비행기는 아름답긴 하지만 저주받은 꿈이지. 하늘은 모든 걸 삼켜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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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코: "당신은, 살아가세요.     살아야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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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로니 백작: "자네는 살아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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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이 자꾸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로가 별로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졌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꿈을 추구했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그 엔딩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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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연인의 죽음으로 불행하게 끝난 사랑은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성공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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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이시 조의 음악은 언제나 그렇듯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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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기억에 남는 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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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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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은 시대를 앞서 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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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은 그런 다음에 따라오는 법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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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로니 백작: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기술도 없어서 이런 건 도저히 만들 수 없다'는 지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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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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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세요.   지금 샘물에게 고맙다고 말했어요.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아까부터 계속 빌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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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씨 얼굴만 보고 바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 고원 요양원을 나와 기차 타고 찾아와 역에서 지로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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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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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 여기서 나하고 살자."   --> 고원 요양원을 나와 찾아온 나오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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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결혼하겠습니다."   --> 남녀가 유별한데 같이 있게 해주기 힘들다는 구로카와 상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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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에겐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각오하고 있어요."  --> 산으로 보내지 않고 같이 살려고 하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냐는 구로카와 상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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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보다 임무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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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영화가 미국영화였다면 지로는 제작소를 때려 치우고 나오코와 같이 산으로 들어가는 그런 장면이 펼쳐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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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이것도 고뇌 끝에 나온 당시 젊은이로서는 최선의 답이 아니었나 싶다.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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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하지만, 이 만화영화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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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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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 정권은 ... 깡패 정권입니다.  파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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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밤이군요. 여기는 Der Zauberberg (마의 산). 잊는 데는 최고의 장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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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전쟁, 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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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을 만든 것, 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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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맹 탈퇴, 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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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적으로 만든 것, 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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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파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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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파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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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마의산은 결핵 요양원이 있는 산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한 청년 한스 카스도르프가 7년간에 걸쳐 겪는 취생몽사의 체험을 내용으로한 소설로, 1913년~1924년에 걸쳐 집필되었다. 여러모로 '바람이 분다'와 겹쳐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자전적 소설 바람이 분다를 쓴 호리 타츠오의 아내는 결핵으로 결혼 1년 후 사망했고 본인도 역시 결핵으로 48세에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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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참여했는데, 엉뚱하게 그림이 아닌 주인공 지로의 목소리로 즉, 성우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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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미야자키상이 까라면 까야지.. ㅎㅎㅎ 이건 정말 웃기다. 그런데 좋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