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M> Green Breeze by La+ YACHIYO 야치요 주조의 사케 '방'

2022. 6. 5. 21:55Wine/기타 세계와인

봉주상회 갔다가 추천 받아서 집어온 사케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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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오늘 마셨고, 산뜻하고 단맛이 질척하게 느껴지지 않는 깔끔하고 맛있는 사케라는 생각이었는데, 워낙 사케 치고 디자인이 획기적인데다가 봉주상회 사장님이 뭔가 스토리가 있는 사케라고 살짝 이야기해준게 생각나서 리서치를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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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구글 일본어 번역을 사용한 부분이 많으므로, 오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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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치요 주조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고 많은 내용은 여기에서 가져왔다. 

 

 https://ec.yachiyo-sake.com/

 

八千代酒造

創業明治20年の「八千代酒造」。春霞がたなびく頃、八千代の酒造りは苗を育てる準備から始まります。黄金色に輝く稲穂が豊穣の時、酒米「山田錦」を収穫し、11月から極寒にかけお酒を仕

ec.yachiyo-sa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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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치요 주조는 야마구치현의 하기시의 무츠미 지역이라는 산골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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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20년에 창업했으니 1887년이고, 올해로 135년이 된 곳이다. 몇대째 내려오는 가족경영의 조그만 주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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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구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엄청 산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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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째에 해당하는 (아마도) 가마 쿠미코 사장은, 3자매 중 맏딸로 태어나 고교 졸업후 상경했다가 2017년에 대대로 이어지는 술문화를 지키기 위해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사진으로 봤을때 꽤 젊은 친구일 것 같은데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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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도 계속되는 전통에 혁신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계속 도전한다」는 이념을 내걸고, 2019년 부터는 근처 하기시에 있는 전국적 인지도의 스미카와 주조장 (澄川酒造場)에서 배움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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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봄에 스미카와 주조장에서 스스로 양조한 신 브랜드 [La+ YACHIYO]를 발표하고, ROOM이라는 사케를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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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좀 불명확하긴 한데, ROOM에는 제조사가 스미카와 주조장으로 붙어 있다. 그런데 브랜드 소유는 야치요주조 (八千代酒造場)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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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스미카와 주조는 동양미인(토요비진) 사케로 유명하고, 스미카와 타카후미(澄川 宜史) 장인이 전국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분의 제자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야치요 주조와 스미카와 주조의 거리는 약 30km, 차로 30분 거리이다. 왼쪽 밑으로 하기시(市)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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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 La+라고 써 있어서 '엘에이 플러스?'라고 읽었었는데, 세상에나.. 무려 라플라스를 의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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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Simon Laplace (1749~1827).  프랑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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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를 소환한 이유는 행성끼리의 공명 현상을 제언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명 라플라스 공명 Laplace Resonance. 궤도 공명은 공전하는 두 천체가 일직선상에 놓일 때 서로를 미는 힘이 크게 증폭되는 현상인데 그네를 태워줄때 진자 운동의 주기를 이용해서 작은 힘으로 더 큰 효과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상호 중력의 증폭 현상은 불안정한 상호작용을 가져오지만, 정수비를 만족하는 공전주기로 오히려 안정화될 수도 있다. 이 안정화 사례는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 유로파, 이오의 1:2:4 공전주기나, 지구에서 200광년 거리의 항성 TOI-178의 행성 6개중 5개가 3:4:6:9:18 공전주기로 도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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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궤도공명,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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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는 안가지만 어쨌든,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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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가치가 다양해지고 중요해지는 현대에서, 각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데 성공해서 안정화되는 일종의 라플라스 공명을 (즉 각 개인을 위성이나 행성이라고 본 것) 타자와의 관계 중심이 아니라, 안정화된 개인에 포커스를 맞춰서 브랜드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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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방<Room>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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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닫힌 공간이다. 남과 떨어져서 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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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첫 버전의 라벨에 Free myself니, time of of reward니 하는 말이 쓰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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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시골 양조장 3자매의 맏딸로서의 고단함과 이상이 버무려져 있는 것 같다. 라플라스 공명을 브랜드로 가져왔다는 것과 ROOM을 이름으로 지었다는 것에서 확실히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라플라스가 꽤 유명인인 것 같다. 아마도 건담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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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Place (장소)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은 그분. 그리고 그걸 가져와서 브랜드로 만든 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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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Free myself, time of Re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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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 보면 '일본술을 통해 개별 생활 장면에 가치를 + 플러스 하고 공감과 공명하는 장소 (place)를 만듭니다.' 라고 쓰여 있다. 또한, '일을 마친 주말, 혼자 즐거운 밤, 소중한 친구와의 식사,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공간 <ROOM> 그 입구에 있는 것은 반드시 이런 술입니다.' 라는 꽤 감성적인 설명이 첨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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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신 사케는 2탄 ROOM 'Green Breeze' 이다. 녹색 산들바람? 서도의 물방울(西都の雫)이라는 부제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야마구치현과 하기시가 일본지도에서 서쪽에 있긴 하다만... 굳이 도시라는 명칭을 가져온 것은 일본 서부의 도시지역에서 많이 소비되기를 바라는? 일본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사케가 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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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색깔 확실히 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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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는 '1탄이 닫힌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식한 술이었다면, 2탄은 폐색적인 공기가 흐르는 근황을 피부로 느끼고, 여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바람과 밝은 빛을 느끼고 기분을 키우는 '별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술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고 나와 있다. (내가 의역을 좀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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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1탄이 자기 방이었다면, 2탄은 자연이 좋은 곳에 있는 별장의 방인가? 

맛에 대해서는 1탄이 여운이 계속되는, 치유되는 깊은 단맛, 2탄은 깔끔하고, 은은하게 깨끗하게 퍼지는 단맛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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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은 못 마셔봤지만, 2탄에 대해서는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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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각자의 공간에서 한 시간을 사치스럽게 즐길 수 있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병 디자인에도 그 이미지를 투영했다고 한다. 

사실 이 사케 한 병을 후배들하고 같이 마시면서 뭔가 해프닝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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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소한 일로 둘이 내 앞에서 다투는 일이 있었는데,  아예 둘이 나가더니 10분 이상을 안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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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나한테 미안해 하기는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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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끼리도 잘 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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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같이 마신 사케의 브랜드가 라플라스의 공명인데 말이지... 각자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유지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로운 정수의 공명을 이뤄서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후배들도 이 ROOM을 마시는 순간에는 위에 쓴 이야기들을 모르고 그냥 마셨지만, 이건 라플라스 야치요의 브랜드가 그 의미를 그대로 구현했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모순적으로 나타났다고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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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더 지나고 그런 다툼들이 비온 땅이 굳어서 단단해지듯이 관계의 안정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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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라플라스 공명이 정수배로 안정화 되기 전까지 위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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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이 의미를 같이 나누면서 즐겁게 다시 모여 ROOM Green Breeze 한잔 할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