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슈발블랑 2012 Cheval Blanc, 쌩떼밀리옹, 보르도

2022. 1. 1. 14:21Wine/보르도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선사해줬던 슈발블랑.
.
잔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입장에서는, 거의 자기 학대, 자기 파괴의 최고봉으로 꼽힐 장면이 아닐까 싶다.
.
물론 와인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게 뭐? 할 수도 있겠지만..
.

보르도 근방 지도

.
슈발블랑은 쌩떼밀리옹 지역에 속하는 쌩떼밀리옹 그랑크뤼 중 하나이다. 위 지도에서 보면 오른쪽에 리부르네 Libourne 라는 작은 도시가 보이고 그 동쪽이 뽀므롤, 그 아래쪽이 쌩떼밀리옹이다. 이 지역에서 하나 더 알아둬야할 곳은 서쪽의 프롱삭 Fronsac 이다. 보통 보르도에서 좌안 우안 할때 지도 기준으로 도르도뉴강 우안의 대표 지역이 이 3곳인 것이다.
.
1954년에 제정된 쌩떼밀리옹 그랑크뤼 제도는 대략 10년에 한번씩 평가를 받게 되어 있는데 가장 최근의 평가는 2012년이었다고 한다. 아마 내 기억에, 여기서 기존의 오존과 슈발블랑 외에 안젤루스와 빠비가 (A) 등급으로 새롭게 올라왔다. 그래서 현재는 (A) 등급이 4곳인데, 지금 나오는 소식으로는 기존의 오존과 슈발블랑이 다음 평가를 보이코트한다고 하는 것 같다.
.
2022년 재평가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이 지났는데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떼루아와 와인에 대한 평가 가중치가 너무 낮고, 그 밖의 요구되는 기준에 맞추다 보면 자신들만의 특징과 아름다움이 훼손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
쌩떼밀리옹 크랑크뤼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제도였고 사실상 저 4개 와이너리가 전부라고 봐도 되는데 그 중 원조 끝판왕 두 곳이 안하겠다고 하면 한 70%의 의미가 상실된다고 봐야겠지. 나는 통쾌한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나라도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특히 그 누가 나보다 와인도 잘 모르는 애라면) 짜증이 올라올 것 같다.
.
와인이 농산물이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Quality를 보증하는 제도가 발달해 왔는데, 그러다보니 일부 우수한 와이너리들이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하면서 이렇게 튀어나오는 경우들이 왕왕 있는 것 같다.
.
단, 보르도의 5등급 체계는 예외가 되는게 못 들어가서 안달인 아주 공고한 등급 체계이기 때문이다. 무똥이 여기 들어가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등급이 가격대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매우 신뢰성 있는 가격지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라뚜르, 라피트로칠드라도 등급 안할래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브랜드 자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도 등급의 후광도 무시 못한다고 봐야지.
.
메이저 리그 명예의 전당하고, KBO MVP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
어쨌든, 와인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어 프랑스 와인이네? 근데 그랑크뤼네? 이거 되게 좋은 거겠지? 이렇게 오해하게 만드는게 쌩떼밀리옹 그랑크뤼 제도이고 거기에 굳이 클라스 A를 만들어서 뭔가 누더기 같은 느낌이라... 올게 왔다고 봐야 하나? 그래도 바로 옆 동네인 보르도 등급 체계가 저렇게 권위를 가지는 걸 보면 현실적으로 배아프고 어떻게든 제대로 노력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

쌩떼밀리옹 Saint-Emillion 꼬뮨

.
지도 위 쪽에 보면 슈발블랑과 그 아래쪽 피작 Figeac이 보인다. 옛날에는 슈발블랑이 피작의 일부 였다고 한다.
.
아래 사진들은 내가 2008년에 프랑스 보르도 지역을 여행할 때 찍었던 사진들이다.
.
쌩떼밀리옹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마을 자체가 등록되어 있다. 마을이 참 이쁘고, 관광객도 많고 그만큼 비쌌던 거로 기억한다. 마을 와인샵 와인이 전혀 싸지 않았던... 역시 와인은 미국이 제일 싸다.
.

쌩떼밀리옹 마을 전경

.
그냥 1시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크지 않은 마을이다. 약간 과장해서 저 위에 사진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됨.
.
그렇지만 옛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초록 포도밭과 멀리 숲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대조를 보여준다.
.

마을 주변으로는 이렇게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
프랑스에 이 정도 되는 마을이 또 여러개 있겠지만, 여기는 특히 와인을 만드는 전통과 결부하여 유네스코가 가치를 인정한 것 같다. 마을 내에는 부서진 유적같은 부분들도 존재한다. 마을에 존재하는 전망대 같은 탑도 일부 부서져 있음.
.

마을은 이렇게 옛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
슈발블랑 이야기니까 뽀메롤은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지나가자면, 여기는 아래 지도의 가운데 Pomerol이라는 빨간색 글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Petrus가 유명하다. 그리고 유명세는 덜하지만 오히려 더 비싼 르팽 Le Pin 이 있다.
.
예전에 르뺑하고 페트뤼스 비교시음도 했었는데.. ㅋㅋㅋ 사진 찾으면 그것도 포스팅 한 번 해봐야겠다.
.
내가 별표로 표시해 놓은 걸 보면, 뽀므롤의 기타 유명 와이너리들은 가쟁 Gazin (진짜 길하나 사이에 두고 페트뤼스를 마주보고 있다.) 레방질 L'Evangile 등이 있다.
.

뽀므롤 Pomerol 꼬뮨

.
샤또 슈발블랑은 LVMH가 1990년대에 매입했는데, 아르노 회장 개인 소유로 등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
라벨 양쪽으로 그려진 메달은 각각 1862년과 1878년 파리 와인콩쿨에서 받은 금상 메달이다. 얼마나 좋았는지 그 이후로 계속 라벨에 그리고 있다.
.
(상 받은 거 덕지덕지 스티커로 붙여 놓은 와인들 무시하던 나를 반성한다. 농부의 마음이라고 이해하자.)
.

.
보르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품종은 메를로인데, 특히 우안 쪽은 메를로가 압도적이다. 점토질 토양하고 메를로가 잘 어울린다는 것 같다.
.
슈발블랑은 그 중에서도 유독 카베르네 프랑의 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2012 빈티지의 경우 메를로 53%, 까프 45%, 까쇼 2% 블렌딩이다. 쁘띠 베르도는 안썼네.
.
마치 향수를 뿌린 것 같은 화려한 꽃향기가 난다고 하는데.. 불행히도 그러기에는 시음 당시 온도가 너무 낮았다. 그래도 상당히 인상깊은 라즈베리, 블랙커런트, 붉은 과일류의 향은 종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같이 마신 동생들이 이런 향은 처음 맡아본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잘 즐긴게 아닌가 싶다. 아마 까프 덕분이겠지만, 나는 슈발블랑에서 화한 박하향을 특징적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그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살짝...
.
아직도 너무 어렸던 것일까? 이제 10년 정도되긴 했는데, 따자마자부터 약 3시간 가량이 좋았고, 오히려 다음날 마셔봤더니 상당히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좀 아쉽네... 어떻게든 인공호흡 해서 살려놓고 더 마셔봐야겠다.
.


.

.

결론적으로 성공했다. 낮에 한참을 헤매더니 해가 지고나서 향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

화~한 향 속에서 다양한 검은 과일향과 후추향, 건포도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정도 향이면 뭐... 확실히 가치가 있는 와인이다. 이것 때문에 까베르네 프랑을 자꾸 시도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