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전 최초 설계도 찾은 죄

2011. 8. 24. 17:48예술/미술

우리나라 고고미술 학계와 공무원들의 수준...



조선일보 퍼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23/2011082302580.html?news_Head3

자문회의에 모인 전문가들, 도면 검증 논의는 뒷전
'선배에게 도전하나' 式 질타… 학계 병폐 고스란히 보여줘

"설계도면 발견 시점은 언제입니까?"(A위원)

"2010년입니다."(김은주씨)

"몇 월?"(A위원)

"2월입니다."(김씨)

"며칠?"(A위원)

"(…) 그런데 지금 그게 왜 중요하죠?"(김씨)

"중요하니까 대답하세요!"(A위원)

22일 서울 중구 덕수궁관리소에서 열린 '석조전 복원 긴급 자문회의'는 청문회장을 방불케 했다. 덕수궁 석조전의 최초 설계도를 발견, 최근 본지에 공개한 건축학자 김은주(44)씨를 향해 전문가들의 고성과 질타가 쏟아졌다. 회의장엔 건축학계 전문가, 문화재청·시공사 관계자, 취재 기자 등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A위원은 검사가 피의자를 심문하듯 했다. "그렇게 중요한 자료를 찾았으면 학계 검증부터 받을 것이지 왜 언론사로 들고 갔느냐" "우리가 힘들게 복원 중인 걸 알면 미리 정보를 주는 게 학자적 도리 아니냐"는 게 그의 말이었다. B위원은 교수가 제자 다루듯 했다. 도면을 설명하는 김씨의 말을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원본이 맞느냐고, 응?" "나도 못 찾은 걸 찾은 건 잘했어. 그런데 몇 년도 거냐고?"

문화재청은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석조전을 복원하는 중이다. '대한제국 역사관'을 만들겠다는 취지인 만큼 최초 설계도를 참고해야 했지만 찾지 못했다. 1910년대 잡지의 공사 기록과 국내외 아카이브를 아무리 뒤져도 설계도는 없었다. 이 때문에 복원은 일제가 뜯어고친 1938년 이왕가(李王家)미술관 평면도를 근거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김씨가 최초 설계도를 찾아냈고, 발굴된 도면에는 지금은 없는 3층 베란다와 내부 마감재에 대한 세부 기록까지 포함돼 있다. 새 자료가 나온 상황에서는 쌍수로 환영해야 정상이다.

발견의 의미를 무조건 폄하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 위원들은 김씨가 제시한 층별 평면도를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은 채 "최초 도면은 아닌 것 같다" "일본어가 쓰여 있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고 고개를 갸웃했다. 김씨는 "1933년 이전에는 내부의 변형이 없었으니 원도(原圖)가 맞다. 현재 뜯어낸 벽체의 흔적이 발견 도면과 일치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만큼 이 자리에서 치밀하게 논의됐어야 했다.

회의는 결국 허무하게 끝났다. 한 참석자는 "한국 학계의 고질적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준 자리"라고 했다. 익명의 문화재계 관계자는 "학계 어른이 주도한 발굴이나 연구 성과에 대해 누구도 문제 제기 못한다"며 "찍히면 바로 매장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 더. 학자가 수년간 연구한 결과물을 언론사에 알린 것이 '학자적 양심'을 어긴 것이란 판단은 어느 나라 얘기인가. 김씨는 본지에 제보하기 앞서 어느 방송기자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제보받은 방송사 기자가 문화재청에 문의했더니 '별것 아니다'라고 했대요. 제가 문화재청에 먼저 말했으면 오늘 같은 회의가 마련됐을까요?"